대한성공회 유낙준 의장주교 |
우리 선조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오래된 가치 중의 하나가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내가 부족할 때만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늘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청년과 나이 든 세대와의 인식의 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커서 그만큼 갈등도 큰 상황이다. 세대뿐만 아니라, 성별, 계층, 인종 간 차이를 차별로 만들어 편을 가름으로써 이익을 보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로 인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거룩한 사람들과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배제하는 야만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려는 욕망을 증가시키며 사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을 외면하기에 결국은 모두의 삶을 무너지게 한다.
이기심을 채우려는 욕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의 강을 건너듯이 광야에 머무신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늘이 주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와서 내게 오는가? 우주의 힘이 내게 집중되는 그곳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흩어진 힘들을 모아내는 그곳이 내게 어디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스페인에서 투우사들이 투우장에서 소와 겨룰 때 소가 자신의 힘을 집중적으로 모으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소가 숨을 고르며 에너지들을 모으는 그 장소를 스페인어로 ‘케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바라다'라는 '케레르 querer'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투우장에서 소가 위협을 느낄 때 자신이 미리 보아둔 안전처(케렌시아)로 가려고 한다. 그곳에서 죽을 힘을 다해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다. 투우사는 케렌시아에 있는 소와 싸우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게 케렌시아는 회복과 모색의 장소다. 우리에게 그러한 케렌시아가 바로 용기다. 그곳에 서면 용기가 나게 되는 케렌시아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죽을 힘을 다해 생명을 살리는 용기가 케렌시아에서 나온다. 케렌시아에서 나오는 용기로 중심을 잃지 않고 사는 나날이길 빈다.
하늘이 인간에게 준 힘 중 하나가 케렌시아에서 나오는 용기다. 이것은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하늘이 준 용기는 우리로 하여금 고통을 전가하거나 고통을 부인하는 삶에서 벗어나 고통을 공유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용기는 나와 다른 사람과 서로 연결하고 공유하는 유대를 통해 두려움을 넘어 아름다운 사랑의 삶으로 이끌어 준다.
인정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두려움으로 변하고, 비난받을까 밤새 잠을 설쳐 푸석한 몰골을 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의 은둔처에서 살았던 시간이 어제로 마감되기를 바란다. 상처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은 분명히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 속에 갇힌 삶에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가르는 선이 어제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서로 편가르기를 하고 이로 인해 생겨난 두려움이 만연한지 이미 오래됐다.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질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함으로 우주에서 오는 힘을 맞이해야만 한다. 그러면 주눅 들지 않고 살 담대함이 묻어나는 인생이 된다.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됐지?'라는 체념적인 말들이 많은 사회가 필요한 것은 용기를 가진 순수와 열정을 가진 담대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을 더욱 아끼는 순수와 열정이 현실 상황으로 좌절하지 않고 튼튼하게 펼쳐 나아가는 청년들의 기상이 넘치길 바란다. 아울러 새해를 맞이해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 사회 모두에게, 하늘이 용기를 주셔서 선조들이 물려 준 아름답고 강렬한 거룩한 존재로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유낙준 대한성공회 의장주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