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술로 어떻게 부끄러움을 잊을 수 있을까? 술로 없어질 부끄러움이라면 애당초 부끄러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술주정뱅이의 태도는 우리에게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한 꺼풀 더 들어가 보자. 그는 적어도 부끄러운 모습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잊고 싶은 게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염치가 있고, 양심이 살아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2019년 한 해, 우리 사회를 광풍으로 몰아간 주제어는 양심이고, 염치가 아니었을까? 누구나 범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를 가리기 위한 뻔뻔함에 우리는 분노하였고, 속 훤히 보이는 교언에 이 사회는 튼튼한 사회일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접고 좌절하였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진영 대 진영의 주장만을 논리로 포장해서, 그것도 지식인들이, 마구마구 쏟아낼 때 공동체적 가치는 정녕 종언을 고하였다.
그러나 거울을 남이 아닌 나를 향하여, 저 잘났다는 권력자나 지식인이 아닌 우리를 향하여 들어보자. 나는 어땠고, 또 우리는 어땠는가? 부끄러움에 술을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나마 나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마셔야겠다고 말이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뻔뻔함이, 결론을 내리고 논리를 꿰맞추는 자세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몇몇 유명인사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음에 이 겨울이 우울하다. 내 행태가, 겉모습은 청솔가지에 내린 새하얀 눈송이건만, 속 모습은 흙탕물에 녹아가는 검은 눈 쓰레기 같다는 느낌에 진짜 모습을 잃은 듯하여 찬 바람 날리는 빈 나뭇가지처럼 참 헛헛하다.
세밑 중의 세밑이다. 이 계절에 부끄러움을 잊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술주정뱅이만도 못한 존재이다. 부끄럼 많았던 올 한 해를 건너기 전 자문하면서 씻고 가자. 타인을 향해 분노하고 조소하기에 앞서 나를 향한 거울을 들어보자. 비록 그 부끄러움 없어지지 않고 내년 한 해 또다시 잘못 범하겠지만, 마지막 며칠을 그렇게라도 보내면서 2020년 새해를 맞이해보자.
2019년, 중도일보도 충청의 공기(公器)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온 한 해였다. 날로 열악해져 가는 취재 환경 속에서도 기자들은 한 줄의 진실을 전하기 위하여 발품을 아끼지 않은 채 허허벌판의 청정한 소나무 기상으로 붓을 꺾지 않았다. 좀 더 나은 지역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러 필진도 정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 부족함이 없겠고, 어찌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이 부끄러움 잊고 더 나은 중도일보가 되어 독자 여러분께 나아가기를, 우리 모두 송년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마음 판에 맹세하는 중도 가족이 되어보자.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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