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교통에서도 차별적 언어가 있다. 특히, 트램을 이야기할 때 그렇다. "트램이 도로를 잠식한다"고 하고, "트램의 최대 단점은 도로잠식으로 인한 혼잡"이라고 한다. 트램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심지어는 소위 여론 주도층에 있는 인사도 "트램이 도입되면 도로잠식으로 차가 막히는 것에 대하여 인정하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잠식'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함부로 입 밖으로 던져질 말이 아니다. 적어도 트램과 관련해서 말이다.
우선, 객관적인 표현이 아니다. 쌍방 중 일방에 해당하는 편향적 표현이다. '잠식'이란 '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점차 조금씩 침략하여 먹어 들어감'을 이르는 말이다. 즉, 승용차가 이용하던 공간을 다른 이에게 빼앗긴다는 의미인데, 이 것은 원래 주인이 승용차여야만 말이 되는 표현이다.
알다시피, 도로는 보도 끝에서 보도 끝까지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 공간을 이용하는 주체는 승용차 말고도 버스, 자전거, 보행자 등 여럿이 있다.
자동차가 요즘처럼 많아지기 전에는 도로에 버스와 자전거가 더 많았다. 1980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가 50만대였으니 국민 3700만 명 중 극히 일부 시민을 빼고는 대부분 자전거, 보행, 대중교통에 의지해서 통행했다.
그보다 더 이전에는 우마차와 보행자가 도로를 차지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교통이용자, 자전거, 보행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회복'이 맞지 않겠는가?
두 번째, 법적인으로도 그렇다. 트램은 대중교통이고 대중교통이용은 법으로 보장된 권리이다.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4조는 '모든 국민은 대중교통서비스를 제공 받는 데 있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이 트램이고 대중교통정책인 것이다.
대전시의 버스통행속도는 평균 17.4km로 승용차의 22km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불평등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 트램정책이다. 이를 두고 '잠식'이라고 반대한다면 이는 법 제4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혼잡을 인정하라"는 것 역시 도로소통대책을 우선 세우라는 뜻이므로 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세 번째, 효율성 측면에서도 '잠식'이라는 단어를 트램에 갖다 붙여서는 안된다. 승용차에는 개인이 지불하는 비용외에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하는 주차장비용, 교통혼잡비용, 교통사고비용, 환경비용, 도로공간의 기회비용 등 어마어마한 외부비용이 발생한다. 승용차의 외부비용(사회적 비용)은 자전거의 28배, 보행의 140배에 이른다. 반면, 도로공간은 승용차가 80%를 사용하고, 나머지가 20%를 쓰고 있으니 효율과는 정반대로 도로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요컨대, 사회비용은 어마어마하게 발생시키고, 도로공간은 많이 차지하고 있으면서 '잠식'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너무 염치없는 것 아닌가?
이제, 시대가 변하여 대중교통과 자전거, 보행자의 권리가 강조되고 있다. 트램은 법이 보장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우선하여 추진하는 정책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활기차며 쾌적한 우리 삶터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트램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잠식'이라는 말보다는 '도로공간재배분'이라는 표현을 권하고 싶다. 그래야, 어디 가서 '좀 깨인 사람이네' 소리를 들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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