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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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살고 싶은 곳

임효인 행정과학부 기자

  • 승인 2019-12-23 15:28
  • 수정 2020-07-19 10:23
  • 신문게재 2019-12-24 22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임효인
임효인 행정과학부 기자
며칠 전 대덕대로를 달리다 차를 세웠다. 공동관리아파트 담벼락에 걸린 전시물이 훼손된 게 눈에 들어와서다. 점심 먹으며 공동관리아파트 담벼락 전시(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이곳을 사이언스 월이라고 명명했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참이라 훼손된 전시물이 찰나 눈에 띄었다. 취재를 위해 지나가는 행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 아파트에 담벼락에 붙어 있는 전시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60대 여성은 누구보다 이 아파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이곳에 살았던 주민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원자력 전공자인 남편과 미국에서 생활하던 중 국가가 이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여성의 남편은 국가의 부름에 한달음에 귀국했고 여기 대전, 대덕특구에서 일평생을 보내고 있다.

여성은 이제는 흉물처럼 방치된 이 아파트가 곧 자신들인 것마냥 여겼다. 국가가 불러서 평생을 국가를 위해 살았는데 자신들은 아무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냉소적이고 서글프게 말했다. 그때 귀국하지 않은 연구자들은 해외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다며 지난 선택을 후회하는 어조로 국가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한때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살던 곳이다. 국가는 해외 우수 과학자를 국내 유치하기 위해 1979년 아파트를 건립하고 국내외 과학자들을 한곳에서 살게 하며 자긍심을 고취했다. 그러나 지난 2012년 시설 노후로 모든 입주자가 퇴거한 뒤 이렇다 할 방안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대덕특구 리노베이션 마스터플랜 밑그림이 나왔다. 지난 50여년간 숱한 연구개발 성과를 이뤄내고 국가 발전을 견인한 대덕특구. 앞으로의 50년을 준비하기 위한 첫 단추가 이제 막 자리를 꿰어진 셈이다. 그동안 대덕특구 리노베이션 필요성은 셀 수 없게 제기됐다. 같은 대전에 있지만 마치 섬처럼 고립됐던 그곳이었다. 마침내 공개된 마스터플랜 기본구상안은 대덕특구 내 공동관리아파트를 비롯해 방치된 시설을 재정비하고 출연연-기업 간 융합을 위한 여러 시설을 조성하는 것이 큰 골자다.

이 밑그림을 공유하는 기본구상안 보고대회가 지난 20일 열렸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해 오랜 시간 이곳에서 생활한 연구자들은 이번 대덕특구 리노베이션을 통해 누구나 살고 싶은 곳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쇄된 연구실 안에서만 연구 성과를 내던 시절은 끝났다. 연구소와 기업, 대학이 유기적으로 만나 결과물을 만들고 좋은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게 많은 이들이 그리는 대덕특구의 미래다. 그 시작점에 있는 과학자가 이곳에 있기 위해선 무엇보다 살고 싶은 곳이 돼야 한다. 최 장관의 말처럼 일터로서의 대덕특구만이 아닌 삶터로서의 대덕특구도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대덕특구 리노베이션 마스터플랜은 앞으로 추가 의견 수렴과 고민을 거쳐 내년 말께 확정된다. 그 결과물을 통한 앞으로의 대덕특구 50년의 모습을 기대한다. 임효인 행정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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