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
작금의 우리 사회는 대단히 심각한 이념의 분열 증세를 겪고 있다. 툭 하면 친일과 반일, 친미와 종북 처럼 양 극단의 진영을 만들어 서로 적대시하며 총성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나라를 책임지는 청와대나 지도층은 분열을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이를 이용하고 키우려는 생각뿐인 것 같다. 그러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국민 대다수가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위험한 이분법적 원리주의자가 돼가고 있다.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매년 이 시대를 꿰뚫어 보는 눈동자이자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을 말해주는 한 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고 있다. 올해는 '공명지조(共命之鳥)'가 꼽혔다. 공명지조는 '몸은 하나, 머리가 두 개인 새'를 의미하는 말로, 한 쪽이 없어지면 생존이 불가능한 존재를 빗대는 표현이다. 서로가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뜻이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졌는데 한 머리는 낮에, 다른 머리는 밤에 각각 일어난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다른 머리가 이를 질투했다. 다른 머리가 화가 난 나머지 어느 날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었고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됐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는 우리들 자화상이란 생각에 미치니 무척 속상하다.
한편, 공명지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택을 받은 사자성어는 '어목혼주(魚目混珠)'였다. 물고기 눈(어목)이 진주와 섞였다는 뜻으로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어 분간하기 힘든 상황을 말한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된 것은 무리를 이루려는 습성 때문이 아니라 모르는 개체와도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사피엔스'에 나온다. 세상에 온통 내편만 있으면 어떻게 될까. 어디를 가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 나와 닮은 사람만 있다면 그곳이 과연 살기 좋은 세상일까.
그래도 이 세상이 아름다운 건 인종, 피부색, 풍습과 종교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양한 인간들이 서로 전혀 모르면서도 공동의 선(善)을 위해서라면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차이 때문에 우리 삶이 더욱 풍부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 하지 말고, "내 탓이오"를 먼저 외칠 수 있는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
내년에는 부디 분열된 우리 사회가 대승적으로 '상생(相生)의 지혜'를 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서로의 갈등을 치유하는 즐거운 성탄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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