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화 미디어부 기자 |
#2. "그 점수면 당연히 승진하는 거 아냐?" 얼마 전 B 팀장은 입사 동기들과의 연말모임 자리에서 동료가 전해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었다. 중앙본부에서 근무하는 동료는, 최근 업무수행 등급 평가서류를 작성하면서 그의 점수가 소속지역에서 최고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승진과 직결된 업무를 처리한 동료의 말 한마디는 B 팀장의 승진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료들보다 먼저 승진 대상자에 포함되면서 지난해에는 특진까지 거론됐지만, 연차 대비 2년 이상 빠르고 유례가 없다는 이유로 좌절되고 말았다. 올해도 이른 감은 있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게 상황과 절차를 따지며 부려지는 게 아닐 터… B 팀장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심스럽게 축배의 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해마다 인사시즌이 되면 수많은 조직이 '승진 앓이'로 뒤숭숭해진다. 여성가족부에서 '금융권 단계별 승진 확률'을 조사한 결과, 남성의 경우 직원에서 초급관리자로 승진할 확률이 50.4%로 전체 중 절반 수준으로 나타났다. 초급에서 중간관리자까지는 59.3%, 중간에서 고급관리자까지는 77.6%였으며, 임원급 고급관리자는 83.4%였다. 구인 구직 사이트 벼룩시장에서 '직장인이 꼽은 행복의 순간'을 조사한 결과도 봤다. 보너스와 연봉에 이어 '승진했을 때'라는 응답이 직장인 7명 중 한 명꼴인 14.1%로 세 번째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피라미드 구조의 조직체계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사람 수가 줄어 승진 확률은 커지지만, 치열함은 농도가 짙어지기 마련이다. 상대에게 밟히느냐, 내가 밟아버리느냐의 '뫼비우스의 띠'다.
직장인들에게 승진은 생활의 활력일까, 인생의 굴레일까…. 일을 통해 얻는 경험과 지식을 자기계발의 기회로 삼고, 인생의 방향 설정에 녹여 지향적인 삶으로 승화시킨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인생을 위한 도구로서의 직장생활이 '승진의 굴레'에 갇혀 병들고 내면을 얼룩지게 한다면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A 본부장과 B 팀장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승진'은 식욕이나 성욕과 맞먹는 본능이기에 한동안 그 굴레에 갇혀 번뇌의 시간을 보내며 아픈 만큼 성숙해질 것이다. 역시 인사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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