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사랑의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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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사랑의 절벽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9-12-21 18:21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수평선 너머로부터 밀려온 파도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쉼 없이 해변으로 나른다. 모래사장이나 갯벌에 부서지던 파도가 이곳에서는 산호초 띠에 발목 잡혀 드러눕는다. 바다가 곧바로 파아란 하늘, 흰 구름과 만난다. 청정한 공기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이 선명하다. 꾸밈이 없어도, 뭐랄까 그 빛이 참 찬란하다. 서태평양 마리아나군도에 있는 괌이다.

포르투갈 항해사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 주항 중 1521년 3월 6일 이 섬에 도착하면서 서양문명과 접촉이 이루어진다. 1565년 스페인이 소유권을 주장한 이후 1898년 미국이 통치권을 갖기까지 스페인이 다스린다. 그때 만들어진 전설이 있다.

스페인 출신 한 장교가 추장 딸에게 반해 자신과 결혼을 강요한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차모르 여인은 몰래 연인과 도망간다. 발각되어 스페인군에 쫓기다 절벽에 몰리게 된다. 두 사람은 긴 머리를 서로에게 묶어서 한 몸이 되어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이후 두 연인의 죽음은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로 전해지며, 영원히 함께하는 진정한 사랑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그들이 뛰어 내렸다는 '사랑의 절벽'에서 사랑의 종을 치고 영원한 사랑을 기약한다. 전망대 아래 벽, 가는 길목마다 열쇠 잃은 사랑의 자물통이 걸려있어 장관이다.

괌은 태평양 전쟁 때 일본에게 잠시 점령된 적이 있다. 그때 일본군에게 강제 징용되어온 사람 일부가 패전이후 그냥 눌러 산 경우도 있나보다. 그를 시작으로 한국인이 정착하여 지금은 5,50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주로 유통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모양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국민성에 따라 향유하는 문화가 다름을 알게 된다. 한국인은 자연을 향유하기 위해 여행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단순한 느낌일지 모른다. 역사유물에 가면 일본인이 눈에 많이 띄고, 자연물에 가면 한국인이 많이 보인다. 자연과학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과 놀이의 구분은 아닐까? 놀 때는 확실하게 노는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놀이도 경제이다. 생산성을 고려한 사회과학이다.

마음가는대로 유유자적하며 자연을 즐기던 소요유(逍遙遊)가 도가의 전유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린 오랜 세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왔다. 고상한 공부라고 해야 벼슬아치 되는 일이 전부였던 당시, 벼슬 못하면 의지와 관계없이 소요유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거기서 안분지족을 찾는 것이 그나마 지혜로운 일 아니었을까?

원주민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혜와 정서가 담긴 문화유산을 관람하며, 체험하고 이해하는 것은 당연 하다. 풍습이나 전통예술 공연을 보다 보면, 관광객 구경거리가 된 원숭이 무리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오래 전에 누군들 의관을 제대로 갖추었으며, 지금 같은 생활환경을 조성하였겠는가? 우리도 불과 백 수십여 년 전에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푼돈 수입을 위한 오락물이라면 다 함께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보는 이에겐 소요유일지 모르나, 그들에겐 무슨 의미일까?

제 삼자 눈으로 본 역사 서술이라 그렇지 누가 발견하기 이전부터 사람은 살고 있었다. 문화 또한 존재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그렇고, 뉴질랜드 마오리 족, 괌의 차모르족이 그렇다. 누가 발견함으로서 존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점령군이 주인이 되어, 때로는 우민화로 무력화 시키고, 때로는 중화시키며 원 주인을 말살시키고 있다.

자존심마저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뉴질랜드 마리오족을 보자. 마오리족이 공연을 한다.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놓은 채 기마자세로 바닥을 쿵쿵 구른다. 마오리족 전통무 하카(HAKA, War Cry)이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괴상한 표정을 짓고, 상대를 향해 소리치며 하는 다양한 표정과 몸짓은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든다. 여러 가지 유래가 전해지기도 하나, 전투 중에 하던 몸짓이 이제 뉴질랜드 상징이 되었다.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 긍지로 삼으려 한다. 문화행사뿐 아니라, 각종 운동경기에 앞서 하카로 자신감을 다지고 뉴질랜드인의 자긍심을 일깨우려 한다. 상대에겐 환영의 이벤트가 되기도, 위압감을 주기도 한다.

괌에는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개별 독립국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안다. 자치주로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한다. 미국연방정부는 당연히 둘 다 부정적으로 본다. 괌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다는 고상한(?) 이유를 댄다. 미국이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해 주고 있고, 괌 또한 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경제적 득실이 무슨 대수겠는가? 그 마저 취하는 이득이 더 크지 않은가?

역지사지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사랑마저 마음대로 나누지 못하는 나라에 누가 살고 싶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의지대로 정체성을 지키며, 높은 자긍심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다. 선진국이 해야 될 일은 높은 도덕성을 실천하는 것뿐이다. 그들이 인간다운 모습으로 좀 더 자유롭게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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