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수험생마다 답안지에 시험 감독 확인 인장을 찍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복도 유리창가에 이상한 인기척이 있어 쳐다보니 웬 권총을 찬 사람의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투명 유리창에 비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감독하는 교실 수험생들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주의력 없이 무심코 바라보았을 땐 눈에 띄지 않던 파란색 옷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도 아라비아 숫자 번호를 가슴에 달고 있는 파란색 옷이 둘씩이나 말이다.
긴장한 마음으로 살펴보니 수인복(囚人服)을 입은 죄수 두 사람이 내가 감독하는 교실에서 시험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감시하기 위해 교도소 교도관이 권총을 허리춤에 차고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고사장은 3층이었는데 운동장 쪽 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니 운동장에 대형 버스 한 대가 서 있는데 <법무부 공무 수행> 이란 글씨가 큼직하게 씌어 있었다. 아마도 내가 감독하는 고사장 말고도 다른 교실에서도 죄수들이 검정고시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전광판에 번뜩이는 자막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죄수의 몸으로 갖은 악조건을 무릅쓰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으려고 시험을 보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들의 정신력이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불굴의 투지와 신념이 그렇게 가상해 보일 수가 없었다.
좋은 환경 속에서도 정신 못 차리고 부모 속이나 썩이며 공부 않는 학생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좋은 사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울러 악조건 속에서도 배워서 음지의 그늘진 생활에서 벗어나려하는 청색 옷 입은 얼굴들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들의 불굴의 투지와 신념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이 왜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건 바로 간단하게 나오는 답이었다. 숱한 고생 인생살이 하는 중에 배움이 없어 뼈저리게 서러웠던 그 동안의 울분과 한을 풀어보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고졸 검정고시 합격으로 자신들의 인생 브랜드가치를 높여보려는 생각을 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인생 브랜드가치를 높여 인정받고 잘 살아 보려는 것임이 확실했다.
브랜드 가치는 상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7월 어느 날 지인이 등산복을 사는데 바람도 쐴 겸 같이 가자해서 백화점을 들렀더니 유명메이커 상품 코너에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코너 상품은 값이 비싼 것들이었는데 고가의 돈을 주고서라도 서로가 가져가려고 줄을 선 것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비싼 가격을 주고서라도 서로가 가져가려는 상품은 브랜드가치가 높은 것인데 사람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이 결혼할 때 서로가 탐내는 신랑·신부 감은 소위 브랜드가치가 높은 사람들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브랜드가치는 - 좋은 학벌(학력), 좋은 직장, 좋은 인물, 좋은 가문, 돈 많은 부자, 사회적 직위,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나 권력가, 인지도 있는 사람 - 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리가 있는 항목들이지만 일부는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정작 우선순위를 결정짓는 데는 필수로 생각해야 할 중요 요소가 빠진 것 같다.
위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도, 사람냄새 풍기는 인간다움이 없으면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 사회악을 다분히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부류를 높이 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브랜드가치는 만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돈이나 권세나 지위는 우선순위는 아니다. 또 학벌이나 지식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장이 그 사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어느 정도 기여는 하고 있지만 이것도 우선순위에서는 밀려나야 한다. 짐승 같지 않은 인성으로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것이 사람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제 1 순위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다.
우선 사람다운 사람을 우선시한 후에 그 나머지 것들을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진정한 사람의 브랜드가치는 따뜻한 정이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따뜻한 인격에서 찾아야 한다.
아니, 진정한 인생 브랜드가치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따뜻한 가슴에서 찾아야 한다.
수인복 차림으로 시험을 보느라 의지의 투쟁을 벌이던 눈망울들이 지금도 떠오른다.
부디 좋은 성적으로 모두 합격하여 자신들의 브랜드가치를 높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개과천선(改過遷善)으로 새사람이 되어 칭송받고 존경받는 삶이 돼 주었으면 한다.
아니, 가슴 따뜻하게 사람냄새 풍기며 브랜드가치 높은 사람으로 살아주길 당부한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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