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환경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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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환경의 역습

  • 승인 2019-12-18 11:23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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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가진 거라곤 두 번의 이혼 경력과 16달러의 은행 잔고가 전부인 '에린'. 고졸에다 뚜렷한 자격증이나 경력도 없어 일자리 찾기가 막막하기만 한 그녀는 우연히 차 사고로 알게 된 변호사 '에드'를 찾아가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겠다며 눌러 앉는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수북히 쌓인 서류 속에서 이상한 의학기록들을 발견하게 된다. 흥미를 느낀 그녀는 그 사건을 조사하면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되는 데 바로 그 마을에 있는 대기업 공장에서 유출되는 크롬성분이 마을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번호사 에드의 도움을 받으며 이 거대기업을 상대로 한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2000년 개봉한 이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평범한 로펌 직원이 부도덕한 대기업과 법정소송을 벌인 실제사건에 바탕을 둔 영화다. 바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보상을 이끌어낸 '힝클리(Hinkley) 주민 대 PG&E 사건'이다. 이는 대기업 PG&E사의 공장이 크롬 성분이 있는 오염물질을 대량 방출해 인구 650명의 작은 마을인 힝클리의 수질을 오염시키고 주민들을 질병에 걸리게 한 사건으로, PG&E사는 3억 3300만달러에 달하는 배상액 지불 판결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1991년 경북 구미에 있는 두산전자가 공장에서 사용한 다량의 페놀 원액을 낙동강 수원지로 몰래 흘려보내다 발각된 '낙동강 페놀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엄청난 항의는 물론 전국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그룹 회장이 사임하고 환경처 장관이 경질됐으며,대구시민들이 두산 측에 170억 100만원에 달하는 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19년. 기업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가 부른 '악몽'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작은 시골 마을인 장점마을에서 주민 90명 중 22명이 암에 걸리고 그 중 17명이 사망한 일이 알려졌다. 이 마을의 '암 집단 발병' 원인은 인근 비료공장이 퇴비로만 사용해야 할 담뱃잎 찌꺼기인 '연초박'을 불법적으로 유기질 비료로 만드는 가열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휘발돼 주민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비료공장이 들어선 2001년부터 저수지의 물고기가 대량 폐사하기도 했다. 연초박이 인간은 물론 자연생태계에도 악영향을 준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장점마을에서 시작된 '집단 암 공포'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청주의 북이면에서도 주민들이 지역 폐기물 소각시설을 대상으로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고 있다. 폐기물 소각장이 밀집해 폐암 등 호흡기·기관지 질환자가 급증하면서 마을 주민 상당수가 암, 질환 등에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작년 북이면의 암 환자수는 45명이었다.

강원 횡성지역 퇴비공장 인근 주민들도 악취와 함께 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이 마을에선 2009년 이후 주민 9명이 암으로 사망했으며, 1명이 투병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 남원시 내기마을에서도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주민 17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주민들은 암 발병 원인으로 아스콘공장을 지목하고 있다.

이처럼 전국 곳곳이 들썩이자 정부는 전국의 공장과 소각장 인근 마을 등 환경오염에 취약한 시설에 대한 신속한 조사를 지시했다. 그동안 기업의 논리에 등외 시 해왔던 '환경의 역습'으로 인간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현옥란 편집부장

현옥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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