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가.
오래 전 어느 신문 기사에서 본 장미희가 부산에 올 때마다 들른다는 해운대 대구탕이 생각났다. 장미희가 단골이라는 대구탕집 아냐고 달맞이 고개 주민들한테 간절하게 물었지만 그건 잘 모르겠고 대구탕집은 있다고 알려준 식당이었다. 식당 이름이 그냥 '속시원한 대구탕'으로 대구탕은 단순하고 허세가 없었다. 재료는 대구, 무, 파가 전부인 듯 했다. 국물이 맑을 거라 생각했는데 약간 진했다. 직장생활 하면서 양념이 과한 식당밥을 오래 먹은 탓인 지 단순한 음식이 당긴다. 부산 할매가 끓인 대구탕은 엄마가 해주는 그런 음식이었다. 대구탕과 밥 한 공기 싹 비웠지만 옆자리 얘기 엿듣는 데 재미 붙인 바람에 뭉그적거리면서 파래김만 쪽쪽 찢어먹다 겨우 일어났다.
부산은 역동적이다. 이국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깨를 부딪히는 사람 거개가 외국인이다. 빈부의 차이도 확연하다. 해운대는 나같이 돈 없는 사람 기죽이기 딱 좋은 곳이다. 내년 초 입주한다는 101층짜리 엘시티는 고개를 90도 젖히고 올려다봐야 한다. 사람들 패션감각도 외국의 어느 휴양지 저리 가라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온 몸을 문신으로 도배한 여자를 만났다는 거다. 그녀와의 조우는 달맞이 고개 리조트 뺨치는 찜질방 사우나탕에서였다. 푸르딩딩한 용 문신이 까무잡잡한 온 몸을 휘감아 도는데 정말이지 한 마리 용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저 정도 문신이면 업계에서 한 자리 하는 여자겠지? 해운대파 오야붕? 난 잔뜩 흥분해 그녀가 있는 온탕으로 직행했는데 벌떡 일어나 냉탕으로 가버리는 게 아닌가. 조금 있다 내가 그쪽으로 가자마자 오야붕은 때 미는 자리로 갔다. 거 참, 썰 좀 풀자는데 되게 비싸게 구시네. 누아르 언니와의 랑데부 불발로 난 식혜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여행 마지막 날 생각했다. 퇴직하면 영도 흰여울마을에서 한번 살아볼까. 부산항과 남항이 한눈에 보이는 곳. 이 마을은 피란민 정착지로 전망이 죽여준다. 바닷가 경사지에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문만 열면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여기서 라면집 하는 남자도 그 멋에 들어왔는데 생계가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노을 하나는 끝내준다며 강추했다. 노을빛이 매일매일 다르단다. 여름 태풍 때 성난 상어처럼 으르렁거리는 너울도 장관이라고 했다. 뭐 어때, 김치 하나 놓고 밥 먹으며 강아지 키우면서 살면 되지. 가끔 냉이 넣은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이고 낚시로 잡은 생선 구워 올리면 진수성찬일거야. 볕 좋은 날엔 빨래해서 마당에 널고 라디오 들으며 김치전 부쳐 먹고 낮잠도 자는 근사한 인생! 누군가 그러길, 상상력이 풍부하면 인생이 피곤하다고 했는데.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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