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진 편집부 기자 |
음식 코너에서 초밥을 구경하고 있는데 저녁 6시가 넘었다며 할인 판매를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곧이어 초밥 포장 위에 할인된 가격 스티커가 일제히 나붙기 시작했다. 문제는 기껏 골라 놓은 연어 초밥 딱 한 접시만 스티커가 붙지 않았다는 점이다. 직원은 저 멀리서 바빠 보였는데 큰 목소리로 "혹시 연어 초밥은 세일 안 하나요?"라고 물었다. 내 인생에선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어릴 적 별 것 아닌 일상사 하나하나가 힘들었다. 배달 음식 주문을 하는 게 힘들어 매번 다른 사람에게 미뤘다. 카페를 갔는데 아르바이트생이 표정이 안 좋은 게 신경 쓰여 주문하지 않고 그냥 나오던 시절도 있었다. 볼 일을 물어보기 힘들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고 수줍었던 탓이다. 취업 면접만 20번 넘게 봤는데 한번은 도중에 중단된 적도 있다. 면접관이 호흡이 곤란해 보인다며 진행을 만류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하고 나서 선배들께 인사하는 당연한 일도 나름대로 고충이 많았다. 목소리가 우렁차면 다른 사람들도 날 쳐다보겠지. 눈을 마주치면 작위적으로 보이진 아닐까. 혹여라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을 땐 못 본 게 아니라 날 싫어해서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닐까. 그랬던 내가 감히 연어 초밥의 할인 여부를 캐물었다. (안 된다길래 이건 왜 안 되는지 여쭤보기까지 했다.)
나이가 들며 사람은 얼굴이 두꺼워지고 부끄러움을 덜 느끼게 된다. 상당수 중년들이 20대의 눈에는 낯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도 아마 이런 연유일 거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늘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소심한 이들은 적절하게 당당해질 수 있다.
30대가 가까워지니 세상 살기 편해질 정도가 되고 있다. 아마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상태가 더 좋아지면서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러워지고 삶의 영역도 늘어나지 않을까.
얼마 전 친구가 스무 살로 돌아가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은지 물었다. 아무리 가능성이 낮더라도 지금보다 큰 꿈을 품을 수 있는 그때가 그립다고 했다. 현재의 기억을 모조리 갖고 돌아간다면? 어떤 주식이 오르고, 어느 동네 집값이 뛰는지 알아 부자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면 좋겠지만 지금도 썩 나쁘진 않다. 다른 의미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진 걸 느낀 덕분이다. 나중에 되면 이걸 연륜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려나. 전유진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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