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목요일 상강(霜降)을 막 지난 전형적인 가을을 가슴에 꽉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문우(文友)님들과 함께 문학의 현장을 방문하여 수학하는 의미심장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우여곡절 끝에 날짜가 정해졌고, 기행목적지는 조선의 3대 여류작가로 잘 알려진 매창(梅窓)의 본향인 부안에서 신석정(辛夕汀) 시인과 매창의 시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일행은 서로의 다른 공상을 머리에 그리며 모두들 한껏 기대에 들떠있다.
함께한 일행은 모두 아홉 명, 12인승 봉고차를 랜트해서 오전10시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유성 IC를 빠져나가 시원하게 뻗은 호남고속도를 질주할 때의 기분 정말 괜찮았다.
출발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차 안은 시끌벅적하다. 매창이 자기 여친(女親)인양 장황한 사랑 이야기를 하는 사람, 격포(格浦)에서 먹거리로 즐길 활어회에 대한 사전평가, 가을을 곱씹으며 단풍과 주렁주렁 달린 단감을 보면서 가을에 취해 있는 사람, 심지어 아련한 소년, 소녀로 돌아가 옛 추억에 잠긴 사람, 온통 요란함도 있지만 왠지 해학과 익살을 먼저 내세운 입담에 까르르하는 맛깔스런 웃음이 오히려 듬뿍 정이 느껴지는 즐거운 분위기다.
중간에 여산 휴게소에 들렀을 때는 주변산천의 단풍도 형형색색이고 단풍나들이 가는 많은 여행객의 옷 색깔 또한 울긋불긋 하기가 산천의 단풍에 비해 그 고운 색 또한 만만치 않다. 모두들 기대에 부푼 표정들이라 밝고 발랄하다. 차에서 내리니 여인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여자분 여행객들(다른 팀의 관광객)은 특유의 수다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그저 마냥 즐겁기만 한 모양이다.
누군가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 : 天高馬肥의 어원)라 했던가! 가을 하늘 정말 높고 푸르니 변방의 말들이 살찔 만하다.
휴게소에서 마음을 재충전한 우리의 랜트카는 여유 있으면서도 안전하게 이제 충청남도의 경계를 지나 전라도에 접어들었고, 전주(全州)를 지나 부안(扶安)을 향해 달리고 있다.
누군가 신명을 주체치 못해 노래를 부르는데 70년대 초에 전국을 넘어 일본까지 유행을 휩쓸었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르고 일본말로까지 봉사하는(김00 선생님) 멋진 시간을 가졌다. 출발한지 두 시간 정도 지날 때 드디어 태인 IC를 통과하여 5 ~ 6분정도 지나서 좌측으로 꺾어 도니,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 나온다. 낙양(洛陽)이란 이름의 마을이다. 뒤편 조그마한 동산들을 등지고 앞으로는 개천과 드넓은 평야를 이루는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안착(安着)한 전형적인 풍수에 맞는 마을이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새 집 앞에 차를 멈추고 집 구경하고 가자한다.
터 밭을 앞에 차고 있는 훌륭한 서양형의 집, 일행 중 보석 같은 여학생인 김요미 선생님의 집이라고 한다.
우리는 중간 휴식 겸 집 구경 차 들렀는데 집 구조는 내진설계로 매우 탄탄하고 깔끔하다. 이층으로 올라가 테라스에서 앞을 보니 태인(泰仁 : 泰山과 仁義가 합쳐서 생긴 지명)의 넓은 황금벌판이 시원하게 펼쳐져있어 마음과 정신을 아주 맑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중간 음주(발렌타인 17년생)로 동력을 충전시킨 다음 첫 번째 기행 목표였던 부안이 낳은 전북의 대표시인 신석정(辛夕汀)을 기념하는 석정문학관에 들렀다.
본명이 석정(錫正)이었던 그는 이름을 시적운치를 더 할 수 있는 석정(夕汀)으로 바꾸어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격동의 현대사를 지조와 강렬한 역사의식을 작동시켜 문학적 서정과 서사로 표출한 석정은 한국시단의 거성이었다."고 문화원장이 소개해주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우리는 석정이 전북을 대표할 수 있는 거인임을 알 수 있었다.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의 혼란상을 극복하고, 새롭게 수립해야 할 바람직한 민족 국가의 모습을 '꽃 덤불'로 형상화 한 시야말로 그의 대표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꽃덤불
― 신석정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城)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 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 덤불에 아늑히 안겨보리라.
그는 침묵과 숭고함을 현실에서 그 지조를 지키고자하는 신념과 기개를 志在高山流水(뜻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라는 단어로써 표현하고 있었다.
이 문학관은 2011년에 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전국에 시를 사랑하는 시인을 위하여 오래토록 유지하기를 기대하면서 최종 목적지인 매창(梅窓)공원을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차량이 멈추는 곳이 바로 매창공원(梅窓公園)이다.
일행은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채 시기(詩妓) 매창을 만났다. 아담한 정원 형식으로 꾸며진 매창 공원은 말할 것도 없이 매창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조선시대 황진이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다는 매창! 비록 무덤 속에 고이 잠들고 있었지만 그의 혼(魂)은 살아있어 일행과 시(詩)로써 대화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혼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우리 곁에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의 숨결은 들리는 듯했고, 그의 사랑이 살갗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수묵화가 김호석 화백이 그린 매창(梅窓·1573~1610)의 영정/부안군청 제공 |
부안에서 태어난 매창은 조선시대 기생신분으로 이름은 향금(香今)이고, 자는 천향(天香)이며, 계유(癸酉)년에 태어났다하여 계생(癸生)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매창은 아호이며 그는 특히 거문고 다루는 솜씨가 일품(一品)이었다고 전해진다. 풍류를 즐기면서도 정절을 고집했으며 다재다능하여 촉망받던 예술인이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추사(秋思), 춘원(春怨), 견회(遣懷), 증취객(贈醉客)등 많은 작품이 있지만 역시 최고작은 '이화우'가 아닌가 싶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때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 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여라
어느새 취흥을 돋우었던 발렌타인의 기운은 꺾어져 사라지고 마음이 애틋함에 압도되어 일행은 숙연해졌고 매창의 혼(魂)이 살아있음을 인식하고 기념촬영을 한 뒤 순방은 이어졌다.
부안은 넓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였다고 하는 새만금 방조제를 우축 옆구리에 끼고 돌아 격포에 도착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한산한 분위기였다. 바다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서둘러 활어회를 시켜 꿀맛 회와 매운탕으로 접심 식사를 했다. 꿀맛이었다. 남은 발렌타인17에 전회장님이 가지고 오신 시바스리갈 + 소주 + 맥주로 분위기는 절정을 이루었고 모두들 만족하여 귀전(歸田)하였다.
일행은 이번 기행을 통하여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여행, 동료애, 문학사랑, 푸짐한 선물 등 모든 것을 얻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장상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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