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여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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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여보, 고마워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12-0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나는 공주에 살고 있는 처고모의 딸, 처제(김택희)로부터 눈물겨운 병상일기 이야기를 들었다.

처제의 남편(이규선) 되는 동서는 토목공 건축기사로 관공서 도급 공사를 맡아 일을 하고 있었다.

2014년 4월 18일 공주시청 도급공사 도로 상?하수도 공사를 하던 중 갑작스런 사고가 발생했다. 공사 현장은 위험하기 때문에 오가는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 위험 표시와 서행운전이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면허 취득을 한 지 며칠밖에 안 된 30대 청년이 표지판을 무시한 채 난폭운전으로 과속 주행을 하다가 대형 사고를 냈다.



사고 피해자는 처제의 남편이었는데 즉시 119에 실려가 공주의료원 진료를 받았으나 의식불명이었다. 사고환자는 워낙 중상이어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얘기가 99%는 죽은 사람인데 살아도 식물인간이 될 거란 얘기가 무성하게 나돌았다.

거기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주변 사람들의 입담까지 푸짐했는데 남의 얘기 같질 않았다. 만약 환자가 죽지 않고 식물인간으로 숨만 붙어 있다면 가족들은 그 고생 어떻게 하냐며 남의 걱정이 아닌 자신들 얘기처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중상자 처제의 남편은 뇌 손상으로 2개월 보름이 지났는데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환자가 식물인간이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들이었고, 처제는 가슴을 졸이며 환자 곁을 떠나질 않았다.

환자는 5개월이 지나 겨우 눈을 뜨고 말문이 텄으나 눈망울만 멍한 게 바보 같았다.

정상으로 의식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감사하며 좋아들 했다.

처제는 하늘이 무너져도 내 남편은 내가 살려야겠다는 신념으로 간호하고 보살폈다. 처제는 해오던 모든 일을 정리하고 환자에게만 매달려 병원에서 살았다. 오로지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며 시중들고 환자 곁을 지켰다. 그런 인고의 병간호 생활이 만 3년이나 되었다.

정신신경외과 의사가 뇌 진단 결과를 말했다. 환자의 지능은 똘똘한 강아지만도 못하다는 절망적인 이야기에 처제의 가슴은 무너지고 찢어지는 듯했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기적은 있다고 믿는 처제는 그 기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온 심혈을 기울였다. 처제는 지치고 힘들어 체중감소가 되어가며 또 다른 환자로 보일 정도였으니 그 정신적 육체적 고충은 오죽하였으랴!

장기 치료로 환자도 지치고 병상을 지키는 처제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환자가 장기간 병고에 시달리다 보니 지치고 어려워 짜증을 내는 때도 있었다.

환경변화와 요양이 병세 호전에 도움이 될까 하는 기대감에서 잠시 퇴원을 했다. 허나 기대와는 달리 호전 반응은 보이지 않아 다시 대전 재활 병원에 입원했다.

만 3년 동안 진료 받은 병원은 무려 '공주의료원'을 비롯해서'우리병원' '대전재활병원' '한가족재활원' '을지병원' '대전 재활병원(재입원)' 5개의 병원에 6회나 입원을 했다.

대학 병원 일반실로 옮긴 지 2개월 만에 간병인을 써야한다고 해서 간병인을 썼다. 처제의 심사숙고 끝에 간병인한테만 맡겨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늘 환자 곁에 붙어서 환자의 손발이 되다시피 시중을 들었다.

간병인 두고서도 늘 곁에 붙어서 사랑과 정성으로 스킨십도, 뽀뽀도, 자주 해주었다. 그래야 환자가 안정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 환자 곁에는 처제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내 남편을 내가 꼭 살려내겠다는 다부진 마음으로, 만 3년간 모든 시간을 남편을 위해서 다 쏟았다.

환자에게는 치료 약물보다도 가족의 진실한 사랑과 정성이 상황 호전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온 가족이 합심하여 매달렸다.

처제처럼 깜찍한 처제의 자녀 남매도 아버지의 정상 의식 회복을 위해 수시로, "나 없을 때 혹시 엄마가 아빠 구박하지 않았어?"하는 식 등등의 말로 환자가 생각할 수 있게 하고 말하는 것을 유도해 냈다.

아빠의 치유를 위한 남매의 행동 하나하나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베워야 할 일거수일투족이 되기에 충분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위중한 혼란 속에 자신까지 잘 못 되면 집안이 엉망 된다는 것을 알고, 이를 악물다시피 공부하여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그 어려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엄마를 구심점으로 아빠를 살려내려는 남매의 갸륵한 마음은 가상스러울 정도였다.

처제의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돌봄의 행동은 하느님과 부처님의 신심도 움직인 것 같았다. 기적으로 처제의 노고를 보상하시려는지 환자의 의식이 정상으로 되살아남을 시간이 흐르면서 느낄 수 있었다.

거동이 어려웠던 환자가 부축해서 걸을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인지 능력도 많이 좋아졌다. 처제의 남편에 대한 정성과 진실한 사랑에 하느님도 부처님도 감동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 환자가 인지능력이 살아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는지 멘붕 현상의 행동을 했다. 환자는 타고 있던 휠체어를 차버리고 나뒹굴면서 이상한 행동에 소리까지 지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처제는 남편 환자에게 더욱 극진한 정성과 진실한 사랑을 느끼게 하려고, 환자에게 소생의 의지를 갖게 하려고, 더욱 더 최선을 다했다.

아내의 진실한 사랑과 마음을 알아서였는지 환자는 평온을 되찾고 재활 치료가 날로 호전되고 있었다. 거기다 환자의 전에 없던 소생 의지까지 덤으로 생겨나 환자의 상태는 날로 좋아지고 있었다.

햇살이 유난스레 밝은 2017년 3월 초순 어느 날 아침, 처제의 남편(이규선)은 지칠 대로 지쳐 또 다른 환자가 되어 있는 아내한테 " 여보 고마워 ", " 당신도 살아줘서 고마워요"하며 부부가 주고받는 짤막한 대화였다.

처제는 남편의 '고맙다'는 그 한 마디에 천하를 다 얻은 행복감으로 부풀었다.

그 동안 지쳐 있던 심신이 활기를 얻어 춤추는 기분이었다.

왕후가 된 것보다도 더 진한 행복감, 여기에 천금 만금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남편을 사랑과 정성으로 살려냈으면 그만이지 거기에 더 바랄 게 뭐가 있으랴!

아니, 영영 못 볼 수도 있었던 남편한테서 영약의 효험 같은 그 한마디를 들었으면 그만이지 여기에 무슨 바람을 더 보탤 수 있으랴!

"여보 고마워."

이 한 마디는 천군만마를 얻은 쾌승장군의 기분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선한 아내에게 하늘이 내린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여보 고마워! "

"당신도 살아줘서 고마워요!"

처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처제는 자격증 있는 현대판 열녀임에 틀림없었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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