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소명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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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소명 의식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9-11-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학 시절 학생 사이에 동아리 활동을 권장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심지어 세 가지에 미쳐야 한다며, 그 셋 중 하나가 동아리라 했다. 세 가지는 학문, 사랑, 동아리이다. 한 선배는 동아리를 통하여 인생의 길을 찾았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다양한 분야를 접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게 생각되었다. 필요하다 느끼는 족족 동아리에 가입하다 보니 다섯 개나 활동하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정작 중요한 학문에 소홀했다. 사랑도 해보지 못했다. 소명 의식이 없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알지 못했다.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보다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진리 탐구를 추구한다. 그렇다고, 대학의 역할을 순수학문이나 예술교육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직업교육만 하는 곳은 더욱 아니다. 각기 다른 창학이념을 내세우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이 있다. 과연 대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대학진학이나 일류대학이 목표가 되고, 좋은 직업만 지상목표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직업교육만 대학교육의 목표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부정적 측면이 교육 잘못이라 단정할 수야 없겠지만,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나 않을까? 수개월 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사건이 시작될 때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직업관, 직업 선택과 직업윤리, 가진 자의 횡포에 관한 걱정이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는 것이 모범 답안일 것이다. 사회에 벌어지는 일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어찌 귀천을 따질 수 있겠는가? 과연 현실도 그러한가? 분명 선호하는 직업이 있다. 의지와 달리 귀천을 체감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것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노력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바라는 바를 얻지 못했다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일이요 직업이다. 곧 자아실현의 통로이자 경제적 생계수단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의 지혜이다. 따라서 책임과 의무가 따르고 그를 수행함에 정직, 성실, 신의가 있어야 한다.

자기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은 긍지이자 자부심이 되고, 나아가 행복감이 된다. 여타 직업이 모두 소중하지만, 교육자가 얼마나 소중한 직업인가? 사명감을 가지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최고 교육자가 되는 것이 소명 의식 아닐까? 위대한 교육자가 되는 것보다 보람된 일이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외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부수적인 직책이나 직위에 매달리는 경우도 많다. 본질과 거리가 멀다.

십여 년 전 필자가 관리하던 시설에 한 정치집단이 1박 2일 행사를 한 일이 있다. 행사 주인공은 학자이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며 세간에 널리 회자 되던 사람이었다. 모두 인사를 나눈 것은 아니었으나, 원장실에서 운영진과 소담을 나누며, 구성원 대부분이 교수임을 알았다. 주인공은 자신의 저서에 직접 서명 해주며 동참해달라 청했다. 사무총장이라는 사람도 물론 교수였는데. 이튿날 아침, 입회원서를 들고 찾아왔다. 저녁 내내 책을 읽었다. 고귀한 저서를 감히 평가할 수야 없지 않은가? 우리 취향이 아니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커다란 의문이 하나 생겼다. 정치행사나 쫓아다니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자 역할일까? 수십 년 쌓은 해당 분야에도 일가를 이루지 못한 사람이 일을 바꾼다고 그것이 가능할까? 다른 일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다음 대통령 선거의 한 후보 캠프에는 교수 1,500명이 참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의외의 사각지대가 많다. 교수는 교육 자체가 모두 경험한 일이요, 나름 공부도 하겠으나 교수법을 따로 배우지 않는다. 정보전달자 역할은 할 수 있으나 사도를 생각할 수 없는 체제이다. 그만한 일쯤이야 스스로 체득할 수 있다 보는 것일까? 직업교육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공인, 공직자의 자세를 모르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공직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가 요구됨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법적인 문제도 초월한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는 기본이다. 그러함에도 내부승진이 아닌 임명직이나 선출직 공직자는 윤리의식이 체득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직위를 남용하거나 권한을 남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삐뚤어진 선민의식일까? 때때로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다.

자신의 위치나 소유의 크기에 따라 삶의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스스로 향유 하는 것이야 자유라 하더라도, 그를 통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특히 지식인은 언행을 삼가야 한다. 거짓이나 곡학아세(曲學阿世)도 지식의 크기에 비례하여 그 죄가 크다. 일반인은 알지도 못하는 온갖 특혜를 아무렇지 않게 누리려 하고, 거짓을 밥 먹듯 해서야 되겠는가?

좋은 것은 모두 자기와 관계있거나 자신 일처럼 포장하고, 잘못은 모두 남 탓으로 돌리는 사회가 되어서야 희망이 있는가? 거짓으로 점철된 사회가 되어서야 기대할 게 무엇인가? 우리가 하는 일에, 우리 모두 소명 의식을 갖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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