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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 지음│민음사
시인은 '우리가 시를 쓰는 건 시를 부수기 위해서였다. 모든 부서지는 것만이 잠시 빛났다.(…) 그 후 시를 쓰지 못했다'는 말을 시집의 문 앞에 세워뒀다. 시를 쓰지 못했으니 잠시 빛나는 것도 없었을 테다.
나를 참으면 다만 내가 되느냐는 책의 제목에는 나와 대립적인 것이 결국 나를 이루는 역설적인 세계관이 담겼다. 시인은 수록작 「또 다른 기일」에서 '나를 연습하지 않으려' 하며 ' 나에게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린다'고 말한다. 도달할 내가 없기에 나를 연습하지 않는다. 두 편의 시 제목에 등장하는 '마조라나 페르미온'이라는 단어는, 입자인 스스로가 스스로의 반입자인 소립자를 뜻하는 말이다. 두 시는 많은 순간 습관적으로 인내하는 우리가 자아라는 허상과 환상을 좇고 있지 않은지 바라보게 한다. 나를 찾는 것은 사실상 "나에게 위조되어 있"는 누군가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스스로를 스스로의 대립자로 만들어 무구한 자아의 역사를 다시 쓴다. 나에 대한 환상을 부수고 난 자아가 빛난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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