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근사함의 빛, 그리움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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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근사함의 빛, 그리움의 그늘

  • 승인 2019-11-28 10:20
  • 수정 2020-06-30 11:33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우리가 함께한 시간도 근사했지?"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마지막 장면. 제인이 스티븐에게 묻는다. 스티븐 호킹 박사 부처(夫妻)로 영국 왕실의 초청을 받아 작위를 받으러 버킹엄궁을 방문한 날이다. 박사의 업적 덕분에 일반인으로서 궁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된 제인은 오늘 일이 근사했다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 시간도 근사했는지 물었다. 특수음성 재생장치를 통해 박사는 "우리 작품들 정말 멋지네"라고 대답한다. 박사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부부의 세 아이들이 있었다.

함께 한 시간이 근사했는지를 묻는 제인의 얼굴에 햇살이 비췄다. 상대에게 근사한 시간을 만들어줬다는 확신을 가진 질문. 제인은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스티븐을 20년 넘게 곁에서 돌보며 그가 학자로서 삶을 이어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과 보낸 시간이 근사했는지 그는 물을 자격이 있었다.

'제법 훌륭하게 괜찮다'는 의미의 근사함은 그리움과 이어진다. '제법'이라는 부사가 붙은 만큼 완벽함과는 다르지만 더 친근하고, 친근하기에 잃어버리면 사무치는 순간을 만든다.



또 다른 영화 '타임머신'의 주인공 알렉산더는 연인을 사고로 잃고 타임머신 개발에 매달린다. 연인과 보낸 시간의 근사함은 과거로 돌아가 그를 살리고 싶도록 했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무수한 시도 끝에 타임머신을 완성해 과거로 돌아가고 연인이 당할 사고를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연인은 다른 원인으로 사망을 맞이한다. 알렉산더가 타임머신을 만들어 시간여행을 하게 된 원인이 연인의 죽음이기 때문에, 상황을 아무리 바꿔도 타임머신은 연인이 죽어야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과거로 돌아가도 현재를 바꿀 수 없었다. "우리를 과거로 인도해 주는 것은 기억이고 우리를 미래로 인도해 주는 것은 꿈이지." 시간여행 중에 만난 종족의 독재자가 말한다. 타임머신은 없다. 누군가와 함께 보낸 근사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건 기억 속에서만 가능하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꿈일 뿐이다.

그리움이 후회를 데려오는 계절이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다 숙인 고개가 마음 끝에 닿는다. 근사한 시간은 근사한 줄 모르기가 쉬웠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순간들은 그리움의 그늘을 짙게 만들었다.

많은 것이 끝났거나 끝나간다. 함께 보낸 일 년이 근사했는지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한 해였을 것이다. 올해 수능을 치른 모두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할만한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 수능을 준비했던 첫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만한 잘못도 아픔도 모두에게 없었으면 좋겠다. 근사함은 최선에서 나온다. 기억과 꿈으로 떠날 시간여행 속 2019년이 근사하기를 바란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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