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줄만 알고 떠났던 영국 날씨는 생각보다 화창했다. 런던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셰필드역에서 내린 일행은 트램을 타고 셰필드대에 도착했다. 아카이브에 도착해 촬영 허가를 요청하던 정 PD가 마침내 동의를 받아냈을 때 비로소 우리 일행은 웃을 수 있었다. 자료를 보는 내내 계속해 터져 나오던 감탄과 벌겋게 상기된 우리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열람을 마치고 다시 런던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도 생생하다. 한편으론 이것들을 어떻게 세상에 알릴지 부담이 엄습하기도 했다. 내내 롤러코스터를 탄 3박 5일이었다. 셰필드대에 보관 중인 자료들은 얼핏 봐도 흥미로운 게 많았는데 이것들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앞으로 꼭 필요한 일 중 하나다.
처음 산내 골령골 사건을 안 건 수습기자였던 2015년이었다.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수천 구의 유해가 땅속에 매장돼 있는데 그 땅을 파고 농사를 짓겠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유족들은 여기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해가 많이 있어 훼손하지 말라는 표지판 하나 세워 달라고 요구했지만 구청장은 국가 사무라며 유족의 요구를 참 매몰차게 거절했다.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여겨지는 사건이란 게 골령골 사건에 대한 첫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단 조금 나아진 형편이다. 골령골을 알리는 데 우호적인 구청장이 취임해 관련된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과 정부가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을 추진 중이란 부분에서다.
한국에 돌아와 기획기사를 쓰고 있던 지난 15일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에 있던 유해가 세종 추모의집으로 임시 이전됐다.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참히 가족을 잃어야 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억울해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 감정들은 가까운 미래 유해가 다시 산내로 돌아오는 그 날엔 꼭 지금보다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과 이곳에 잠들 희생자들의 혼이 많은 이들의 위로와 공감으로 달래졌으면 하는 바람, 그로 인해 여전히 아버지를 부르짖으며 눈물 흘리고 있는 유족의 상처가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그런 것들이었던 같다. 그들의 상처가 나아지는 데 나도 함께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임효인 행정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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