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수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장 |
한국지역학회에서 연구하는 '지역학(地域學)'과는 달리 '지방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이 탄생해 종단면적으로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게 됐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한다.
일단의 학술적 패러다임이 탄생하면 학자들은 자발적으로 학회를 창립해 이 분야를 심도 있게 연구한다.
그리고 학회는 자발적 참여와 창의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자들의 모임인 사단법인(社團法人)을 만들어 어렵더라도 회비로 운영하며 재단 법인화 하거나 정부기관에 소속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경우 연구비나 세미나 운영비는 정부 기관이나 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그럴 경우에도 학회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며 지원받는 기관을 대변해 어용학회(御用學會)가 되지는 않는다.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민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대전시와 세종시에서 추진하는 '지방학'으로서의 '대전학'과 '세종학'은 정체성 확립 시점과 소속기관에 대한 문제가 큰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정체성 확립 시점의 문제다. 대전과 세종은 오래전부터 지역에 뿌리를 둔 주민이 대부분인 충남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대전과 세종은 다수가 유입된 시민들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면 세종시민들에게 옛날 연기군 시절까지의 '뿌리의 정체성'만을 강조한다면 대다수 시민으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세종시의 '미래 정체성'을 찾아 이를 먼저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그다음에 뿌리의 정체성을 알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 순서일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세종시민 모두가 세종시에 소속감이나 자부심을 가지고 '윈윈(win-win)'하게 될 것이다.
둘째, 소속기관의 문제다. '지방학'이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돼 관제화되면 많은 학자들의 관심 영역에서 멀어져 버린다. 우리나라 25개의 지방학 가운데 21개의 지방학이 연구회나 학회를 구성하지 못하고 '서울학'을 따라 별 의식 없이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 연구센터에 소속돼 있다.
학문은 자유로워야 하며 그 안에서 무한한 잠재력과 창의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하다고 해서 지방자치단체 소속 관제 학회를 만들어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국가가 사단법인인 연구회나 학회를 관제화하지 않고 지원하듯 지방자치단체도 인내를 가지고 지원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인내하고 지원하는 만큼 '지방학'의 자발성과 창의성이 다시 지역 주민의 정체성 확립과 '삶의 질' 향상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강병수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