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회식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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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회식의 계절

  • 승인 2019-11-25 11:27
  • 신문게재 2019-11-26 22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한세화인물사진-소
한세화 미디어부 기자
2019년이 저물어간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도 끝자락만을 남겨두고 있다. 해마다 특히 이맘때가 되면 집 안의 공기를 지배하는 냄새가 있다. 이글거리는 불판 위에서 타들어 가듯 구워진 고기와 알코올이 섞인 남편의 체취다. 발꼬랑내보다 고약하다. 예전 임신했을 때에는 없던 입덧까지 생겨 한동안 고생스러웠다. 남편은 회식이 있거나 외부 일정이 있는 거의 매일 가족들의 후각 역치를 갱신시킨다. 술을 매개체로 사람과의 관계를 다지고 확장하는 조직문화에 최적화된 진정한 '애술(愛酒)가'다. 남편처럼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이 '윤활유'가 돼 인간관계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며 그들만의 궤변을 늘어놓는다. 다만, 커피잔보다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대화가 더 진솔하고 깊이 있다는 건 잘 안다. '술 회식'을 꺼리는 젊은 후배들을 향해 사회생활을 모르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남편의 푸념 역시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직장 내 '회식 문화'가 바뀌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서 2030 직장인 796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회식에 대해 조사했는데, 전시회나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 회식'이라는 응답이 23%로 1위를 차지했다. 마사지나 테라피 같은 '힐링 회식'을 응답한 비율은 21%로 2위, 볼링이나 당구 같은 '레포츠 회식'은 16%로 3위였다. 회식의 형태도 달라졌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맛집 탐방'과 '음주 없는 간단한 저녁'이 좋다는 응답이 절반이 넘는 56%였다. 반면, 술자리 회식을 원하는 비율은 10명 중 한 명(9.9%)에 그쳤다. 주 52시간제 확산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직장인 10명 중 6명은 '회식을 거부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근로자로서 정당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술이 주체가 되는 회식은 이제 '단합의 상징'이 아닌 게 돼버렸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이미 술 회식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점심시간에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썰며 와인을 마시고, 간단한 저녁 식사 후 전신마사지 받는 회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조직 내 불어오는 신개념의 회식 문화가 40대 중반을 코앞에 둔 입장에서 조금은 씁쓸하다. 옛날 사람의 구시대적 가치관일 수도 있겠다. 술을 좋아하지도, 술자리를 즐기는 편도 아니지만, 삭막해져 가는 조직의 분위기가 아쉬울 따름이다. 회식의 종류나 형태의 신박함보다 더 중요한 건 함께하는 이들과의 정서적 교류일 것이다. 선배의 고충을 공감하고, 동료의 어려움에 격려를 아끼지 않고, 후배의 고민을 헤아려주는 진정한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래본다. 연말이면 더욱 진해지는 남편의 체취는 곧 온 집안을 가득 메울 것이다. 사람과의 교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의 개똥철학이 사랑스러운 '회식의 계절'이 왔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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