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정말 악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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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정말 악처였을까?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 승인 2019-11-25 08:11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양성광이사장
양성광 이사장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에게 끝없이 바가지를 긁어댄 악처로 유명하다. 그녀가 악처의 대명사가 된 것은 전해지는 몇몇 일화 때문이다.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제자와 계속 토론만 하는 소크라테스에게 화가 난 크산티페가 남편에게 물바가지를 뒤집어씌운 이야기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천둥이 친 다음에는 큰비가 쏟아지게 마련이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 여자를 견디어 낼 수만 있다면, 천하에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소크라테스는 저술을 한 적이 없으니 그의 사상과 일화들은 제자들과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크산티페와 관련된 일화들은 주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을 통해 전해졌다. 남의 시각으로, 그것도 정치적으로 자기 남편과 정반대 성향인 아리스토파네스에 의해 자신이 2,500여 년 동안 최악의 악처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을 안다면 크산티페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아마 당시에는 그녀에게 해명의 기회가 있었더라도 남성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그저 자기합리화라 치부됐을 것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이 보편화된 지금이야말로 아내로서의 크산티페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좋을 때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유명한 철학자였지만, 사실 아내의 입장에서는 돈도 없는 주제에 맨날 토론이나 한답시고 수다를 떨러 다니는 한심한 남편이 아니었을까. 50이 넘은 나이에 30살이나 어린 아가씨와 결혼했으니 요즘 같으면 도둑놈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어린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이들을 내팽개쳐버리고 매일 밖으로만 도니 집안 살림은 크산티페가 다 책임져야 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소크라테스야말로 쫓겨나지 않은 것을 고마워해야 할 정도로 나쁜 남자의 전형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시대적 환경과 누구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차이가 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남을 쉽게 평가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특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대한 이러저러한 뒷말을 건네서 들을 땐 깊은 상처를 받는다.

세상이 너무 급하게 변하고 세계가 인터넷으로 빠르게 연결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것에 많이 노출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너무 빠르게 다른 사람들과 섞이니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적응할 시간이 부족하다. 많은 이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의 주장만 펴고,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한다. 이에 따라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유튜브가 성행한다.

잘못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봐도 자칫하다간 ‘꼰대’로 치부되기에 십상이니 나서는 어른이 없다. 젊은이들은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잔소리만 해대는 기성세대에 그냥 입을 닫는다. "와, 하마터면 열심히 일할 뻔했어!"라는 자조적인 말이 이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서로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건전한 토론 문화를 정착해야 건강한 사회다. 우리 사회는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 등을 치유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동양 철학의 대가인 최진석 교수는 "우리는 지금 모두 감성이 배제된 객관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나도 남들의 평가에 따라 소크라테스의 아내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타인의 눈으로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다른 생각의 사람이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광장이 온·오프라인 상에서 많이 필요하다. 언론은 서로의 갈등을 부추기기보다는 냉정한 토론의 장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

필자는 아주 어릴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착각했던 적이 있다. 이제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남에게 관대해지니 삶이 좀 더 편해졌다. 누가 나를 나쁜 남자라고 손가락질해도 그냥 ‘씩’ 웃을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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