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높새바람이 등줄기 땀을 식히던 날 외지에서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상여 길을 막고 마을 사람들과 돌쇠 상주와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과 상주와의 다툼은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동네 나들목에 장례 예식장 대형버스가 멈추더니 상두꾼들이 운구를 하기 위해 상여를 꾸며 놓았다. 1㎞ 거리의 마을 뒷산 양지쪽에 매장을 하기 위해 요령잡이의 구령에 맞추어 상여가 동네 입구로 들어올 때 생긴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상여가 우리 마을에 못 들어오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상여 속의 망인 되는 사람은 원래 우리 마을에 살았는데 상주 돌쇠가 18세 되던 해 충남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로 이사를 갔다. 상주의 아버지 되는 망인은 동네에서 악소문의 주인공으로 낙인이 찍히다시피 살다가 끝내는 안 좋은 일로 마을을 떠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망인 되는 사람은 사기꾼에 노름꾼으로 낙인찍힌 삶에 성격이 곰살궂은(※3) 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부도덕한 일을 밥 먹듯이 하는 위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심을 잃을 대로 잃었다. 더 이상 잃을 신뢰성도 인정받을 만한 그 무엇도 없었다. 그 주제꼴에 나름대로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고 굳은 마음으로 발버둥 쳐 봤지만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평판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고민갈등으로 뒤범벅이 된 생활 끝에 고향 마을을 등지고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앞일은 예측하기 어렵다더니 운 좋게도 이사를 간 그 지역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신도시 개발지역이 되었다. 거기가 부동산 투기지역에다 세종특별자치시가 되는 바람에 벼락부자가 됐다는 것이었다. 2,3만원하던 논 밭뙈기가 40만원 50만 원 대로 호가되다 보니 일약 갑부가 된 것이다. 망인은 남매 자녀를 두었는데 세종시가 되기 10년 전에 모두 시집 장가를 보냈다. 남매의 인성은 그 아비와 어미를 닮아서인지 못 돼 먹기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사람 못 돼 먹은 것이 그 부모의 그 새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냄새 풍기지 못하고 사는 삶이니 사람다운 데라고는 눈을 씻고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부전자전(父傳子傳)인 셈이었다.
세종시가 되기 전에 결혼한 남매는 몇 년이 지나도록 부모한테 전화 한 통 없는 위인들이었다. 거기다 명절 때 부모를 찾아뵙는 것은 저 먼, 딴 나라 사람들이나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일로 생각하는 새끼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조치원 그 지역이 세종특별자치시로 승격되어 부동산 거래 가격이 급상승 되는 바람에 돌쇠 아버지와 어머니는 갑작스레 바빠졌다. 아들 딸 며느리의 전화 받는 일 때문이었다. 사람을 사서 전화를 받을 정도 새끼들의 성화에다 극성이었다.
아니, 그 동안 전화 한 통화 없던 세끼들이 않던 짓까지 하느라 뻔질나게 아비 집을 드나들었다. 토요일 일요일이 따로 없을 정도 전에 않던 짓까지 했다. 부모님을 찾아뵙고 일을 거드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효자 효녀가 따로 없었다. 표창을 한다면 모두가 효도 가족이니 누구를 표창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세종특별자치시가 벼락으로 위대한 효자 효녀 효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불손하고 부모 속을 뒤집어 놓기만 했던, 사람처럼 생긴 동물들이 저렇게도 몰라볼 정도 탈바꿈되다니 요지경 속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차가운 냉혈 동물로 살았던 가슴 없는 강장동물들이 어느 사이에 그렇게도 따듯한 가슴을 가진 열혈 동물로 바뀌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판도라 상자를 보는 것만 같았다. 돈이란 것이 참으로 좋기는 좋은가 보다. 약효의 빠르기가 영약 중에서도 특별한 성능을 가진 묘약이니 말이다.
이 집 식구들의 얘기는 입소문에 꼬리를 달고 번져나갔다. 사람들은 그들의 얘기에 심심치 않았다. 소문은 다투어 가속으로 번져 나갔다. 그런 소문을 우리 동내 사람들이 모를 리 있으랴.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의 얘기라면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줄줄이 꿰고 있었다.
게다가 동네에 소문으로 나도는 그것엔 뗄 수 없는 꼬리표 하나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인지 점입가경(漸入佳境)인지도 모르게 그들의 상황을 더욱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돌쇠네 그 떨거지들은 떠나가더니 그만이야. 어미 아비가 그 모양이었으니 그 새끼들인들 오죽하겠어! 아비 어미나 새끼를 한 저울에 놓고 달아보면 한 치 기우는 법이 없을 테니 어쩌면 좋아. 동네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낯짝배기 한 번 비치기를 하나 애경사에 발걸음 한 번 하면 아마도 뒈지는 줄 아는 모양이지."
이와 같이 영광스런 돌쇠네 얘기가 구설수로 난무했다. 동네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나오는 얘기였다. 못돼먹은 얘기하려면 약방의 감초 격으로 나오는 그 집 얘기가 영순위로 나오는 화제였다.
이렇게 훌륭한 그 집 떨거지들이었으니 우리 동네 사람들이 어찌 좋아할 수 있었으랴!
사람냄새를 조금만 풍기고 살았어도 이런 대접은 받지 않았을 텐데.
사람냄새 백 원 어치만 꾸어다 살았어도 산 이와 죽은 이가 이런 귀한 대접은 받지 않았을 텐데!
이사를 했어도 제 살던 고향 애경사에 눈멀지만 않았으면 상여 막아서는 꼴사나운 일은 없었을 텐데…
"이 상여 우리 동네 못 들어와!"
이게 돌쇠네만의 얘기는 아닌 듯싶다.
너와 나도 돌쇠네 가족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맥을 짚어볼 일이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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