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상황에서 우리가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면 참 최악이겠다. 그렇지?"
피곤이 누적되어 몸까지 아프고 정신이 몽롱해지자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졌다. 친절함을 유지하다가도 대하는 사람이 조금만 나와 맞지 않으면 쌀쌀한 태도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극한 상황이 되면 이렇게 달라지는 걸까?
극한 상황이라는 것은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의 철학에서 나온 용어로, 자신이 변화시키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이 직면하는 대부분의 상황은 인간이 영향을 주어 변화시킬 수 있지만, 죽음, 고통 등 인간의 존재를 한정 짓는 궁극적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이것을 극한 상황 또는 한계 상황이라고 한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이처럼 인간을 고독과 절망으로 억누르는 극한 상황을 피하지 않고 맞부딪치면서 존재 자체에 대한 각성을 이루고 사랑과 초월자에 대한 신앙을 갖게 될 때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긴 여정에서 오는 육체와 정신적인 고단함 속에서 자신도 몰랐던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극한 상황이 되면 숨겨져 있던 온갖 모순들을 쏟아내게 되어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사실 이번 일을 통해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다. 그동안 명상과 인성교육을 통해 인성이 많이 갖추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깊숙한 곳에는 아직도 많은 모자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어려움이 덜 해지기도, 더 해지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누구나 힘든 상황이 되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서 나의 모자람을 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법륜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화가 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스님을 이렇게 답을 하셨다.
"어떻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다만 얼마나 빨리 본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법륜스님의 말씀처럼 우린 극한 상황에서는 화를 낼 수도 있지만 화를 내고 있는 나를 알아보고 다시 본래의 평정심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불평불만을 하고 있는 나를 얼른 알아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김소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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