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음식을 먹으면서 살이 안 빠진다고 투덜대는 딸에게 엄마가 일갈했다. 어느 TV프로 얘기다. 말은 좀 거칠었지만,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문제든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면 해결은 멀어지고 시간과 노력은 배로 드는 법이다. 교통사고문제가 그렇다.
그동안 국가적으로나 대전시 차원에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큰 노력을 했지만, 성과를 냈다고 보긴 어렵다.
지난 10년간 교통사고는 전국적으로 연평균 0.78% 감소했을 뿐이고, 대전시는 오히려 연간 2.58%씩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통사고는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보행자사고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교통사고문제의 근저에 '상시 우회전'이 자리하고 있다. 자동차이용자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여 자연스럽기까지 한 '교차로에서 적신호 시 우회전(Right Turn On Red)'말이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우회전하기 전의 횡단보도 신호가 녹색만 아니라면 우회전은 상시로 허용되고 있다.
도대체, 상시 우회전이 왜 문제란 말인가?
우선, 상시 우회전은 교통사고 특히 보행자사고의 주원인이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보행자 사망률은 40%다. OECD 국가 평균보다 2배나 높다. 대전은 50.5%로 더 심각하다.
교통사고에서 차량운전자가 아니라 보행자가 희생되는 것이다. 상시 우회전이 주범이다. 보행자사고는 절반 이상이 횡단 중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에서는 상시 우회전을 허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어서 보행자사망률의 차이는 곧 우회전 허용 여부와 관련이 있다. 우회전을 허용하는 경우, 교차로 보행 및 자전거사고가 40~69%가 증가한다는 경험적 사례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상시 우회전은 우리나라와 중국, 미국의 일부 주에만 있는 특이한 교통운영방식이다.
교통신호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도로표지 및 신호에 대한 협약(Convention on Road Signs and Signals)'을 따른다. 우리나라도 가입되어 있다. 이 협약에 따라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는 적신호 시 우회전(좌측통행인 국가에서는 좌회전)을 금지했다.
상시 우회전의 폐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작 지켜져야 할 우회전 이전의 횡단보도에서도 일시 정지는 물론 신호를 무시하기 일쑤다. 상시 우회전에 익숙해진 탓이다. 엄연한 불법이다.
요컨대, 상시 우회전은 자동차 중심의 사고에 기반을 둔 과거의 잔재일 뿐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지도 않고, 이미 교통사고는 보행자사고로 변화되고 있다.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상시 우회전을 제한적인 우회전으로 바꾸면 된다. '별도의 표시가 있으면 우회전 금지'에서 '별도의 표시가 있을 때만 우회전 허용'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좋다. 도류화된 교차로의 우회전 차로에서는 반드시 일시 정지를 의무화해야 한다. 우회전 후 횡단보도가 녹색이면 보행자가 없어도 무조건 정지하도록 해야 한다.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할 일도 있다. 위험한 교차로에는 반드시 우회전 전용신호를 달아서 조금이나마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지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만 빼고 세계 모든 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특히, 사고의 피해자인 보행자 사망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유지하여야 할 이유가 안전보다 더 중요하고 크지 않다면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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