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운하 대전경찰청장. |
그중 내무부 산하에 경무국을 두어 동포사회의 치안유지와 일제의 밀정을 차단하는 경찰 기능을 수행했는데, 초대 경무국장(경찰청장)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다. 임시정부 경찰의 기틀을 확립했고 이후 독립운동을 이끌며 겨레의 큰 지도자가 됐다.
뒤를 이어 임시정부 경찰의 맥을 이은 사람은 강산 김용원 선생이다. 그는 대전 서구 원정동 출신으로 백범에 이어 2대 경무국장으로 임시정부 경찰을 이끌었다.
군자금 모금을 한 혐의로 체포돼 형을 살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자, 다시 군자금 모금을 계속해 투옥되는 등 형극의 길을 걷다가 마침내 옥고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임시정부 제2대 경무국장이 '대전 출신'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조국광복 후에는 많은 독립운동가가 경찰로 몸을 바쳤다.
해방 후 미 군정 경무(경찰)부장을 지냈던 조병옥 선생은 수양동우회 사건 등으로 5년간 복역한 대표적 독립운동가였고, 안맥결 서울 여자경찰서장과 같은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경찰로 활동했다.
또 태평양전쟁 후 많은 광복군은 경찰이 돼 몸을 바쳤다. 광복군 입대 후 임시정부 거쳐 해방 후 경찰이 된 대전소방서 송병철 순경, 그리고 광복군으로 미국 CIA 전신인 OSS(미국전략사무국, ) 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작전을 도모했던 대전경찰서 백준기 경위 같은 분들이 대표적인 광복군 출신 경찰이다.
6·25전쟁에서도 경찰은 국군과 함께 많은 피를 흘렸는데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백준기 경위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해 3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광복군에서 구국 경찰로 산화한 그는 우리 대전 출신의 자랑스러운 경찰 선배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자랑스러운 경찰 역사를 잊는다면 경찰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대전경찰이 지난 6월 제2대 경무국장 김용원 애국지사 추모행사를 하고 '김용원홀' 현판식을 한 이유도 이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우리 경찰은 높은 수준의 안정적 치안을 유지하고 있고, 여러 나라에서 우리의 치안 인프라를 배워갈 정도의 우수한 치안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경찰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그리 높지 않다. 굴곡의 현대사와 함께해 온 대한민국 경찰의 역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울음까지 그치게 하던 '순사'의 왜곡된 이미지는 오랜 시간 대한민국 경찰을 움츠러들게 한 주홍글씨였지만, 우리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들과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들, 그리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산화한 구국 경찰의 숭고한 헌신이 있었기에 경찰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경찰은 지나온 과거의 잘못을 성찰하며 선진 일류 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장인권상담센터'를 설치해 인권 보호를 최우선과제로 실천하고, '피해자보호팀'을 운영해 시민의 안전을 빈틈없이 지켜나가는 한편 경찰 수사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한 '사건심사 시민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녹색어머니회'와 함께하는 등굣길 교통안전 캠페인, '자율방범대'와의 야간합동 순찰을 통해 공동체 치안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우리 경찰은 '시민을 위한 시민의 경찰'로 거듭나는 새로운 경찰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우리 경찰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김구(1876-1949) |
김용원(1892-1934)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