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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식민지배의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시인이었다. 육첩방의 나라 일본에서, 침략자의 지식을 먹는 시인은 슬픈 천명 속에서 시를 쓴다. 이역만리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대를 염원하는 시인 윤동주에게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시인의 시를 읽고 잠시 숨을 고른다. 파닥이는 심장 소리에 퍼뜩 놀란다. 손에 힘을 준다. 피가 뜨거워진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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