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대한제국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기호흥학회 창설, 오성학교 교감, 청년학우회 간부 등 활동을 통해 민중 계몽을 위해 힘썼다. 1915년에는 대한광복회에 참가해 항일운동활동을 펼치던 중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했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활발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는 대승리를 거뒀다. 현재 생가지에는 생가, 기념관, 사당, 백야공원 등이 조성돼 있으며, 생가 남서편에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장군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내부에는 장군의 생애와 청산리전투 재현 모형 등 독립활동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신가람 기자 shin9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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