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한국 영화 100년을 기억하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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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한국 영화 100년을 기억하며(6)

- <영자의 전성시대>(1975)

  • 승인 2019-10-31 17:24
  • 신문게재 2019-11-01 11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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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이버 영화 스틸 이미지
가장 흔한 것은 가장 대표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영자라는 이름도 그렇습니다. 1970년대 가난한 시골을 떠나 서울로 돈 벌러 온 여성들의 대표 격입니다. 영화는 식모살이, 봉제공장 보조, 버스 안내양, 술집 종업원, 매춘부에 이르는 영자의 추락과 고통을 그려냅니다. 조선작의 원작 소설(1973)과 같은 이름의 이 영화는 전성시대라는 표현을 통해 1970년대 그런 여성들이 아주 많았음을 폭로합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근대화가 공평하게 진행되지 않았음을 발견합니다. 서양식 근대화는 서울과 도시를 중심으로 먼저 진행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방과 시골은 소외됐습니다. 또한 아들로 대변되는 남성 위주의 근대식 교육 수혜와 사회 진출 이면에 딸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영화 속 영자 역시 그러합니다. 직업은 계속 바뀌지만 서울살이의 이유는 동일합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 벌어서 시골의 가난한 어머니, 어린 동생들을 도와야 합니다. 특히 남동생은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영자가 보낸 편지를 읽는 시골 식구들의 모습이 내내 계속되는 서울의 풍경 속에서 흑백 화면으로 제시됩니다. 영자는 절박한 소망에도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빚에 눌립니다. 일자리는 그녀에게 뭔가를 안기고 남겨주기보다 그녀가 소비되고, 소모되도록 합니다. 딱 한 번 시골로 돈을 보내는 것은 안내양으로 일하다 버스에서 떨어지면서 팔을 잃은 대가입니다. 팔 하나가 가족에게 돌아간 셈입니다.

영자가 자살하고 마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그녀가 다리에 장애가 있는 남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사는 모습으로 끝이 납니다. 유신시대 영화는 엄격한 검열을 거쳤습니다. 아마도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미 변경되었을 것입니다. 자살처럼 충격적인 장면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남성 창수가 추락해 가는 그녀를 애끓는 마음으로 돌보지만 1970년대 한국 사회는 수많은 영자들의 희생과 아픔을 위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아류작들은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로 불리며 여성을 상품화하기도 했습니다.



영자 역의 배우 염복순(1952 ~ )은 잊기 어려운 명연을 보여줍니다. 시골 출신 아가씨의 순박함, 점차 세속화되어가는 모습, 그리고 끝끝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지켜내는 강인함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비통함 모두를 온전히 그려냅니다.

김선생의 시네레터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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