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지족(知足)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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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족(知足)의 맛

  • 승인 2019-10-29 12:59
  • 신문게재 2019-10-30 22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한세화인물사진-소
한세화 미디어부 기자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주말에도 노트북을 연다. 업무 특성상 당직을 서는 날이 있어서다. 사내 홈페이지 기사를 수정하거나 주 중에 끝내지 못한 일을 정리할 때도 있다. 평소엔 집 거실의 ㄱ자 모양 소파 한쪽에서 노트북을 사용하지만, 그날은 거실 반대편 끝 주방 식탁에 앉아있었다. 일에 몰두하다가 환기할 겸 고개를 들었는데, 거실 통유리 밖으로 멀찌감치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 찰나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이 뇌에서 글자로 새겨졌다. 그러면서 한 움큼 숨이 들이 마셔지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극한의 희열이었다. 상황은 다르지만 때때로 느끼는 감정이다. 그 순간만큼은 온통 그것뿐이다.

내가 느낀 행복감이 장소가 훌륭해서는 결코 아닐 거다. 집 앞에는 왕복 8차선 도로가 뻗어 있고, 지나는 차량의 소음 때문에 베란다 문도 제대로 열지 못할 때가 많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차량과 삭막한 건물들이 전부다. 아침마다 짹짹거리는 새소리에 잠이 깨고, 물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리는 전원의 집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 행복을 비롯한 인간의 감정이 바깥 현상따라 반응하는 게 아니란 걸 증명해줄 만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행복이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한다. 행복을 느끼려면 우선 만족부터 맛봐야 한다는 얘기다. 모자람이 없이 마음에 들어 흐뭇한 데가 있다는 사전적 의미가 담긴 '만족'. 우리는 만족의 뜻으로 '모자람이 없다'는 부분을 잘못 해석해 남의 다리만 긁어대는 오류를 범하고 살아간다. 좋은 차, 좋은 집, 높은 학력이나 재력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나 역시 더 넓고 깨끗한 아파트로 옮기고 싶은 욕심에 부동산정보에 귀를 쫑긋 세우곤 한다. 물욕의 수레바퀴가 돌아갈수록 내면은 얼룩지고 피폐해질 것이다.

우리는 예전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벌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나라별 행복 여부를 조사한 통계를 보면 '매우 행복'하다는 응답으로 29%를 차지한 캐나다와 달리 우리나라는 3%에 그쳤다. 행복을 지수로 나타낸 통계도 비슷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5.875점으로 57위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씁쓸하지만 예상했던 결과다. 누리는 것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결론이다. 기대와 실망의 쳇바퀴에서 그만 벗어나 만족이 아닌 '지족(知足)'을 구해야 하는 이유다. 지족은 향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마음을 접는 체념과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다. 원하는 것이 전부 이루어지는 게 꼭 좋은 일이 될 수는 없다는 걸 명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잘 되면 잘돼서 좋고, 안되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노력은 하되 결과는 하늘 높이 내던지기를 습관화해야 한다. 조건 없고 대가가 필요치 않은 지족(知足)의 맛은 꿀보다 달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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