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조선의 메세나(Mecenat) 안평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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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조선의 메세나(Mecenat) 안평대군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9-10-27 10:0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재미있어 했다. 미대에 진학하고, 나만의 표현 공간이 있다는 것에 상당한 자긍심을 가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나 일생동안 자기 자신의 일기를 열심히 쓰지 않는가? 세상이란 표현 공간이 얼마나 광활한가? 그를 처음 깨닫게 해 준 것이 건축사 친구였다. 설계를 끝낸 건물 모형을 들고 거기에 담긴 철학과 기술을 장황하게 설명 했다. 아, 세상 모두가 표현 공간이구나. 내가 하는 작업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 보잘 것 없는 것인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초라하게까지 느껴졌다.

인생의 멋은 자기표현에 있다. 자신 만의 몸짓, 언어 구사 등을 통하여 부단히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보여주지 않는 것도 표현이다. 그 모든 것을 통칭하여 예술이라 한다.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만들어내는 모든 활동을 일컫는다. 예술을 즐거운 형태(forms)의 창조로 보는 경우엔 아름다움과 별개로 보기도 한다. 예술이 꼭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느 경우든, 거기엔 학문과 기술도 포함되어있다.

우리가 하는 행위의 목적 양 극단에는 심미적 목적과 실용적 목적이 있다. 심미는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 준다. 실용은 생활을 편리하고 풍족하게 해준다. 물론 둘 다 아닌 경우도 있다. 아름다움과 쓰임새, 심미와 실용 사이에 수많은 경우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예술을 획일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어렵다.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 1859 ~ 1952, 미국)는 예술을 경험으로 이해하고 해석했다. 대부분 창의력 생성이나 상상력 발로가 경험에 근거한다. 접하면 접하는 만큼 상상력도 풍부해지고 확대된다. 개인의 예술적 능력과 별개 문제이다.



인간이기에 활동범주에 제약을 받는다. 무슨 수로 세상 모든 자연을 돌아볼 수 있겠는가? 어떻게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으며, 인류 역사 전체를 음미 할 수 있겠는가? 동 시대 함께 하는 사람인들 모두 만나는 일이 가능한가? 그것조차 개체의 역량에 따라 만남의 양이 천차만별이다.

심미적인 일이 당장 생산성을 갖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실용적인 일에 비하여 작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사회에는 훨씬 높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가 빈곤한 것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예외적인 경우를 언급할 필요는 없다. 예술이 차지하는 우리 삶의 비중에 비하여 그 대우가 너무도 열악하다. 필자는 '열정페이'를 언급한 일이 있다. 열정페이, 하고 싶은 일 하는데 무슨 대가냐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나누어 가지면서, 공유하는 것이니 대가가 필요치 않다는 것일까? 심지어 쥐꼬리 만 한 지원금을 두고,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 무슨 지원금이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런 감동 없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

예술행위의 차등을 해소해주는 일중 하나가 예술 지원이다. 알고 보면 그 지원 방법도 무척 다양하다. 표현 작업 및 활동에 직접적으로 금품을 지원하는 일 뿐이 아니다. 시야를 넓혀주고, 결과물을 처리해주는 일도 중요하다. 제반 지원행위 또는 지원자를 메세나(Mecenat)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대전 계족산 황톳길이 전국 유명세를 타고 있다. 100리 숲길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에코힐링관광지가 되었다. 지역 기업이 조성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특히 장동 삼림욕장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맥키스오페라 뻔뻔(funfun)한클래식'도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외지에 있는 친구들로 부터 문의를 자주 받는다. 그만큼 알려졌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산림욕장 공연뿐이 아니다. 지역의 크고 작은 문화행사에 참여 해주기도 하고, 단독 공연도 자주 한다. 수혜자가 성악가, 관련자뿐이겠는가? 그를 즐기는 온 국민이 수혜자다. 기업홍보에 활용하는 메세나의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예술을 천시하던 조선시대에도 메세나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안평대군(1418 ~ 1453, 왕자, 서예가)이다.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대 명망이 높았으며, 시서화에 모두 능해 삼절三絶이라 불렸다. 특히 활달하고 개성 있는 필체의 서예가로 생전에 이름을 떨쳤다. 세종대왕영릉 신도비를 비롯, 청천부원군심온묘표, 임영대군묘표 등이 전한다. 특히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발문은 그의 작품을 대표한다.

그의 서예 실력은 궁중에 보관된 많은 진적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서화수장에 열정적이어서 많은 명적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와 교유하는 수많은 학자, 예술가의 견문을 넓혀주는데 일조했다 전한다. 당대 서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유홍준은 그의 저서 『국보순례』에서, 「몽유도원도」를 한국미술사 불후의 명작이라 했다. 미술사, 서화사를 넘어 문화사적으로 국보 중 국보라 칭송했다. 이 명작의 탄생에 메세나 안평대군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모두 명작 탄생에 하나의 밑거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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