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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시골에선 공동 우물이 있었다. 동네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동네 사람들의 생명수 노릇을 했다. 함지박이나 물지게로 저녁마다 아낙이나 장정들이 물을 길어 날랐다. 휴일엔 우물은 북새통이었다. 여자들의 빨래터였다. 와글와글한 목소리가 하늘에 메아리쳤다. 동네 소문도 여기서 퍼져 나갔다. 누구네 집 과년한 딸이 시집보내달라며 밥도 안먹고 머리 싸매고 누웠다더라, 어젯밤엔 누구네가 제사였더라.... 우물물은 퍼도 퍼도 마르지 않았다. 두레박으로 퍼 올려 마시면 어찌나 시원한 지. 우물물이 흘러 가는 곳엔 으레 미나리꽝이 있었다. 그 물을 먹고 자란 미나리가 새파랗던 기억이 새롭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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