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지나간 시간의 문을 다시 두드립니다. 1994년. 25년 전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은희의 이야기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1994>나 <응답하라 1988>이 생각납니다. 그 때 그 시절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그린 드라마와 달리 영화 <벌새>는 평범했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여긴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틈새와 균열을 찾아냅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거울과 같습니다. 소녀 은희의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와도 맞물리는 이 작품은 그러므로 어른 은희가 어린 은희를 마주 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내 관찰되고 발견되는 소녀 은희. 그녀는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그 시절 수많은 아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으면서, 또 떡방앗간 집 둘째 딸이자 외아들 오빠를 둔 막내라는 유별함을 지닙니다. 그렇게 그녀는 다른 듯 같은 듯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과 인간관계 속에서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넘어지며, 때로는 알거나 깨달으며, 또 때로는 모르는 채로 세상과 인간, 그리고 자신을 만납니다.
어른 은희의 시선인 카메라를 통해 관객들도 저마다 지난 시절의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사하거나 혹 많이 다르다 해도 어쨌든 어린 아이는 청소년기를 거쳐서 어른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른바 통과의례들을 치르면서 말입니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 방>(1994)에서 소녀인 내가 희재 언니의 죽음을 통해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듯, 영화 속 은희도 한문 교실 영지 선생님의 죽음을 통해 넓은 세상을 만납니다. 가난과 절망 속에 외딴 방에서 자살한 희재 언니가 근대화 과정의 슬픈 흔적이라면,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죽은 영지 선생님은 급속한 근대화의 허망한 균열이라 할 만합니다.
5센티미터의 작은 몸으로 1초에 90번이나 날개짓을 한다는 벌새. 영화 속 은희와 관객인 우리도 수없는 몸부림을 하며 시간을 통과했을 것입니다. 과연 얼마나 성장했고, 얼마나 성숙한 것일까요? 또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요? 영화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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