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초여름, 당시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힘든 시기였다. 친한 선배가 "영화나 한편 보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겠냐"고 제안해 함께 보러갔다. 영화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살인의 추억'. 심란한 마음에 영화가 눈에나 들어올까 했던 나의 생각은 기우였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고민하고 있던 일이 무엇인지조차 잊은 채 2시간여를 영화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빈자리 없이 꽉꽉 찼던 영화관은 종종 안타까운 탄식과 비명만을 빼고는 정말 숨조차 쉬지 않는 것처럼 조용했다.
분노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봤던 영화가 끝이 났고 영화관을 나오며 모두가 생각 했으리라. "부디 저 악마같은 살인마가 하루빨리 잡히기를."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경기 화성 일대에서 부녀자 등 무려 10명의 여성이 살해됐음에도 범인은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잡히지 않았다. 사건 당시 동원된 경찰 연인원만 205만여명, 수사 대상자 2만여명, 지문대조만 4만여 건, 당시 그 일대의 남자들은 모두 조사 대상이었지만 범인의 실마리조차 알수 없었다.
그렇게 국내 최대의 미제사건으로 남으며 영원히 범인이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하지만 얼마 전 그 잔인한 범인의 존재가 33년만에 밝혀졌다.
범인의 이름은 이춘재, 올해 56세로 1994년 발생한 청주 처제 강간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이미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사건의 공소시효는 만료됐지만 범인을 잡기위한 경찰의 끈질긴 노력이 마침내 범인의 얼굴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눈에 띄는 사실은 그동안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이 상당부분 맞았다는 것이다. 경찰대학 교수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2012년 한 방송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본인 의지로 범행을 중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따라서 사망했거나 다른 범죄로 장기간 복역 중일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가 만약 검거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더군다나 이춘재는 우리 가까이에서 숨 쉬고 있었다. 감옥에 간 계기가 된 처제 살인사건을 포함해 청주에서 3건의 살인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춘재가 청주에 머문 기간 동안 옛 청원을 포함해 청주권에서만 수법이 비슷한 5건의 미제 살인사건이 남아 있다고 하니 더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이춘재는 현재 15건의 살인과 수십건의 강간·강간미수에 대해 자백한 상태다. 피해자들은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였다. 그들은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이춘재는 잡혔지만 그 무엇도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로할 수는 없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완전범죄의 추억'은 없어야 한다.
서혜영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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