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영산포 홍어의 거리에 꿉꿉한 비린내가 진동했다. 가게마다 홍어 써는 아낙네들의 손이 분주했다. 휴일 오후 영산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따가운 햇살에 맥을 못췄다. 이층건물로 된 식당은 유명세를 탔는지 사람이 많이 드나들었다. 연예인들의 사진과 사인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발길을 돌려 한적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홍어회를 시켰다. 주인은 국산이라고 했다. 발그스름한 홍어는 복숭아빛깔을 띠었다. 접시를 들고 냄새를 들이마셨다. 영락없는 어릴 적 변소 냄새다. 장마철 재래식 변소에서 나는 오래되고 고약한 냄새. 그땐 거길 들어가는 게 끔찍했지. 시각과 후각을 마비시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썩어문드러진 지옥도. 이 냄새를 좇아 나는 멀리 영산포에 와 있는 것이다.
"김치도 홍어 넣고 담근 거제. 김치에 얹어 먹고 초고추장도 찍어서 먹어 보소." 아주머니가 앞에 앉아 이것저것 일러줬다. 육고기 같은 것도 한 접시 나왔다. 홍어 애란다. 간이라고 했다. 소금을 살짝 찍어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씹었다.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고소한 맛을 느낄 찰나 어느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기 바로 애간장이랑께. 애간장 태우제?" 이번엔 홍어를 김치에 얹어 먹었다. 쾨쾨한 암모니아 냄새가 견딜만 했다. "고온에서 삭히면 톡 쏘는디 지금은 저온 숙성해서 냄새가 들 나요." 옛날 전라도에선 잔칫상에 홍어가 빠지면 욕을 먹었단다. 모처럼 기름지게 잘 먹어 까딱하면 탈 나는데 삭힌 홍어와 먹으면 그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홍어가 소화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홍어는 성적(性的) 수사가 난무한다. 김주영의 『홍어』도 그 맥락이다. 소설의 주인공 세영의 아버지는 별명이 홍어다. 아버지가 읍내 주막 여자하고 불미스런 일을 저지르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그럴만한 근거가 나온다. 수컷과 암컷이 교미할 때 암컷이 낚싯바늘에 걸려 배 위로 끌려올라올 때 수컷까지 올라온다. 수컷 거시기에 가시가 달려 있어 그것을 암컷 몸에 박으면 교미가 끝날 때까지 뺄 수 없다. 결국 수컷은 음을 탐내다 죽는다고 적고 있다. 바람둥이 수컷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지막 홍어 한 점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처음과는 달리 푸욱 삭은 냄새가 입 안에 퍼졌다. 기침이 나오면서 박하사탕 같은 화한 느낌이 오감을 자극했다. 진저리를 쳤다. "오매, 징헌 거."
홍어는 흑산도 산을 최고로 친다. 600년 전, 그 홍어가 목포에서 팔리고 나머진 영산강 하구 영산포로 올라왔다. 그 기간 홍어는 곰삭아버렸다. 홍어는 코를 쥐게 하는 지독한 냄새가 났지만 기가막힌 맛이 나는 새로운 음식으로 변모했다. 삭힌 홍어의 탄생이었다. 영산포는 일제강점기 흥망성쇠와 60년대 근대화로 이젠 포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옛 영화는 사라졌지만 한 번 먹은 영산포 홍어 맛은 잊지 못하는 법. 나주역으로 가는 버스 안 스피커에서 최양숙의 '가을편지'가 흘러나왔다. 친구에게 손편지 쓴 게 언제였더라. 영산포 홍어처럼 깊은 맛이 나는 사람. 난 그에게 어떤 친구일까.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