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교수 |
축제가 생겨난 이유를 신에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에서 유래했다고 분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변화무쌍했던 원시시대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농경사회에 이르자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과 구별하여 일정 정도 일탈을 허락함으로써 변화와 삶의 활력을 되찾으려는 심리에서 비롯됐을 것으로도 짐작한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통과의례라는 이름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다음 단계로 이동할 때 겪는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축제라는 수단이 도입되었다고도 주장한다.
축제는 콘텐츠와 그것이 벌어지는 장소로 구성된다. 특정 지역에서만 열리는 축제처럼 장소가 중심이 되어 스토리가 입혀짐으로써 콘텐츠가 구성되는가 하면, 반대로 장소와는 상관없는 콘텐츠가 공간에 씌워져 만들어지는 축제도 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지를 가릴 수는 없지만, 콘텐츠와 장소가 절묘하게 어우러질 때 성공하는 축제가 탄생한다. 요즘은 스토리텔링 전략에 의해 기발한 콘텐츠가 장소와는 상관없이 축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기발하다 못해 엉뚱하고 다소 무리가 가는 시도로 빈축을 사는 일도 종종 있다.
오늘날의 축제가 도시마케팅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는 관광 목적으로 너무 떠들썩하게 소개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축제를 만들고 즐기는 주인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 어려운, 본질이 부실하고 과장이 난무한 행사로 기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콘텐츠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사고파는 먹거리와 떠들썩한 음악 소리가 왁자지껄한 축제는 다녀와서도 허탈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그렇다면 좋은 축제란 어떠해야 할까? 우선은 콘텐츠가 분명해야 한다. 축제를 왜 개최하고 어떤 내용이 있으며 누가 어떻게 즐길 것인지를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만의 축제'가 되는 것이며 이는 곧 실패하는 축제로 귀결된다. 넓은 공원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제로 축제가 열린다기에 찾아갔더니 정작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식당들은 찾을 수 없고, 장사를 목적으로 참가비를 내고 음식을 파는 식당들만 즐비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다녀온 다음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축제를 구성하는 단편적인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서사구조를 가져야 한다. 개별적인 단어들을 암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것이 이야기를 이루는 구조일 경우에는 오래 기억된다. 이는 인간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구조로 진화한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축제는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도록 기획되어야 함과 동시에 또한 그렇게 즐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축제는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모두가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참가대상이 제한되는 축제도 있기는 하지만 좋은 축제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축제라는 이름으로 개최 측 일부만의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쪼록 이 가을에 많은 축제가 우리가 사는 주변으로 곳곳에서 열린다. 일상의 평범한 삶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고대한다.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를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볼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체험하며 의미를 새기고 즐기는 것도 좋은 축제 감상법이 될 듯하다. 게다가 축제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이를 준비한 사람들의 정성과 수고도 깃들여 있다. 잠시 그 수고까지 살핀다면 더 깊고 훌륭한 축제 체험이 될 것이다.
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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