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유낙준 의장주교 |
코카콜라 음료를 좋아하기에, 코카콜라를 선택하면서 음료수는 오직 코카콜라가 최고라고 절대화시키며 코카콜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고 적대시하는 것이 극단주의의 한 예다. 나는 코카콜라를 마시는데 너는 펩시콜라를 마시니 나는 너를 무너뜨리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이는 극단주의다. 극단주의는 오직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제국주의 질서와 맞닿아있고 그것이 서구가 지배한 근대주의적 삶의 방식이다. 한국사회는 역시 근대국가다. 아직도 진리는 자신이 믿는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절대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인 듯하다. 나만이 진리가 아니고 너도 진리가 될 수 있다는 탈근대적 개방성이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육체의 근육질을 키우기 위해서만 사는 물질주의자처럼 우리는 자본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만이 오직 따라가야 할 진리라는 듯이 살아간다. 그러나 다른 길이 있다. 로마제국만이 진리라고 선포하며 사람들을 지배하던 시대에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당시 사회의 극단주의를 넘어서는 길임을 느낀다. 자신의 인정하고 경험하는 한 문화와 질서만을 허용하고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배척하는 극단주의를 넘어서는 길이 곧 예수의 길이었다. 예수는 눈에 보이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살아있는 영혼의 삶, 즉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하느님의 왕국을 제안한다. 보이는 육체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이 우리를 지배하게 허락하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는 극단주의가 야기하는 온갖 갈등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오늘 아침에 용서와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가르침 안에서 극단주의를 넘어서는 길을 본다./대한성공회 유낙준 의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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