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곧 미리 주문해뒀던 음식이 나왔는데 큰 접시에 담겨있어서 함께 나눠 먹어야 했다. 선뜻 일어난 한 명이 자기가 골고루 잘 담지는 못하지만 한번 해보겠다고 겸손의 말을 하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음식을 덜어주는 동안 처음 듣는 단어가 등장했다. "선생님, 똥손이세요?" 고마움 반 미안함 반으로 던지는 우스개 질문에 모두 웃었다. 필자 역시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아마도 서투른 솜씨를 지칭하는 단어인가보다 생각하며 웃었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똥손’이니 ‘금손’이니 하는 말들이 인터넷에 떴다. 생각했던 대로 요리나 머리 손질 등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똥손이라 하고, 그런 것들을 잘하는 것을 금손이라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은 한글날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쉽게 말하고 읽고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자랑스러운 한글이라는데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오래 전 미국 시카고 아동병원에서 지낸 시간이 생각났다. 필자는 당시 소아정신과 병동에서 연수를 했는데, 그곳의 아동이나 청소년 환자들은 상태가 괜찮으면 낮에 3∼4시간 정도 수업에 참석해야 했다. 이때 간호사들이 아이들의 개별과제를 검사하고 설명도 하며 도와줬다. 필자도 그 일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필자 옆에만 숙제가 쌓여있고 다른 스텝들은 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유인즉 아이들이 필자의 한글 사인을 모은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특성이기도 하고 한글이 신기하기도 했겠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한 청소년의 말은 한글이 그림 같고 예쁘기 때문에 꼭 모으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글은 아름답다. 오늘처럼 내리는 비도 가랑비라고 할지, 이슬비 혹은 보슬비라고 해야 할지 섬세한 차이를 생각하게 되니 얼마나 예쁜가 말이다. 잔잔한 물결에 햇살이 비치는 모양을 나타내는 물비늘이라든지, 갓난아기가 두 팔을 벌려 편안하게 자는 모습을 표현하는 나비잠 같은 한글은 진정 아름답다.
필자는 PPT로도 진행해보았지만 크게 학습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담당하는 교과목의 특성도 있어서 수업시간에 대부분 교재를 중심으로 강의하고 설명한다. 물론 한 줄 한 줄 읽어서는 진도를 맞출 수 없기에 성큼성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문단을 안내해가며 읽어간다. 그래서 책을 한 권 다 읽게 됐다는 학생들의 말에 힘을 얻으며. 그렇게 읽는 것을 나타내는 우리말이 노루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노루가 겅중겅중 뛰는 것처럼 읽는다는 뜻이란다.
한글날을 맞이해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해보아야겠다. 요즈음 같은 불신과 다툼의 악다구니를 잠시라도 잊고 울창한 숲 속 노루가 돼 배움에 몰입해보자고 말이다./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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