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마씨는 먹을 것이 없어 가을철에 들에 가서 논밭두렁에 있는 피를 훑어서 말려 그것을 빻아서 먹고 살았다. 하루는 피를 훑어서 마당에 멍석을 펴고 멍석 위에 피를 널어놓고 들에 나갔다.
일하는 중에 갑자기 소낙비가 내려, 뛰어서 집에 와보니 피가 다 비에 쓸려가 버렸다.
부인 마씨는 손이 부르트도록 훑어온 피가 빗물에 다 떠내려갔으니 화도 나고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마씨부인은 남편을 향해 "당신 같은 사람과 살다가는 굶어죽겠소" 하고 집을 나가 버렸다.
그 뒤 강태공이 출세하여 제(劑)나라의 왕이 되자 부인 마씨는 소문을 듣고 강태공을 찾아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 저를 거두어 주소서" 하면서 애원을 하였다. 그러자 강태공이 부인 마씨에게 물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한 다음 그 물을 땅에 쏟아버리고는 이 물을 다시 담아보라고 하였다. 부인은 물을 다시 담으려고 했으나 불가능 하였다.
태공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별했다가 다시 결합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하면서 부인을 받아 주지 않았다. 이를 고사성어로 복수불반 (覆水不返)이라한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얘기는 약3000년 전에 있었던 실화(實話)다.
그 당시는 여필종부(女必從夫),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부인이 집을 나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강태공의 부인은 "집나간 죄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정서와 윤리도덕과 법률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다툼의 여지가 많다. 장상현의 고사성어에도 "정답은 독자들의 몫이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선악을 논하는 것은 독자들의 자유라는 것이다. 만일 이 사건을 오늘날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한다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판결이 나리라고 보기 어렵다.
쟁점은 부인이 집을 나간 것이 부인만의 잘못이냐는 것이다.
부인은 피를 훑어다가 마당에 널어놓았다는 것은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이에 비해 강태공은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하지 못했다. 먹을 양식이 빗물에 떠내러 가는 것을 수수방관 한 것은 부인이 집을 나가게 한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현대적인 관점이다.
다음은 강태공이 출세했다는 소문을 듣고 부인이 찾아가서 용서를 빌 때 강태공은 부부의 연이 한번 깨지면 다시는 결합 할 수 없다고 매정하게 뿌리쳤는데, 과거 자신의 잘못은 생각지 않고 부인에게만 책임을 전가시켜 빈손으로 돌려보낸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대비해보자.
"아내들이여! 자기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
아내는 남편을 예수님처럼 받들고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진 것처럼 목숨을 바쳐 사랑하라는 뜻이다.
강태공의 부인은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문화는 여필종부(女必從夫)로서 종처럼 사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여인들의 숙명이었다. 그렇다면 강태공은 목숨을 걸고 아내를 사랑했는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가정에 대해서는 소홀했고 무심하고 무정 했다. 수신제가(修身齊家)에 실패했다. 강태공은 결과만을 가지고 부인을 용서하지 않았는데 인생사를 결과만을 가지고 재단하여서는 안 된다. 원인도 결과만큼 중요하다.
포스트모던시대에 복수불반 (復水不返)의 교훈은 부부에게 공히 적용돼야지 어느 한쪽에만 적용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이홍기/ 좋은감리교회 원로목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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