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묘는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이다. 단군 사묘는 개천절마다 제례를 봉행하고 있지만 전체 개수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윤한주 국학박사는 "이강오 전북대 교수가 1980년까지 30여 사묘를 조사한 연구가 유일하다. 현장에 가보니 10개는 사라진 상태였다. 관련자를 인터뷰하고 새로운 자료를 통해 내용을 바로 잡았다"며 "1980년 이후에 설립된 단군 사묘도 모두 조사했다"고 말했다.
이 책에 소개된 단군 사묘는 총 46곳이다. 1909년부터 광복 이전까지 6곳, 광복 이후부터 1999년까지 31곳이 세워졌다. 2000년 이후에도 9곳이 더 건립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대전·충청 15곳, 대구·경상도 7곳, 광주·전라도 16곳, 강원 2곳, 서울 4곳, 경기도 3곳이다.
단군 사묘가 전국적으로 세워진 배경은 1905년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 이후다.
1913년 이진탁이 충남 논산군 두마면(옛 계룡산 신도안) 작산마을에 단군전을 세운 것이 대전충청 단군전 건립의 효시다. 일제는 당시 민족의식 유포 혐의로 이진탁을 3개월 동안 투옥하기도 했다.
윤한주 박사는 "일제는 단군을 구심으로 한민족이 결속되는 것을 두려워 했다"며 "단군 유적지를 파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는데 독립운동가들은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단군을 정신적 가치로 삼았다. 이후 단군 사묘 건립이 확산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어 윤 박사는 "유서 깊은 사찰이나 향교에 관한 책은 많지만 단군 사묘에 관해서는 안내서조차 찾기 어렵다"며 "선조들은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사묘를 건립했다"고 강조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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