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컴퓨터를 열어보니 제목만 달랑 써져 있는 칼럼이 임시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임시 저장된 파일을 열고 한 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습니다. 지난 주 쓰려고 했던 '우선순위 정하기'라는 칼럼의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지난 주 어떤 생각으로 이런 제목을 썼는지 기억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글을 써왔지만, 글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동안 써온 글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글을 쓰기 위해 준비를 하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다보면 불현듯 어떤 주제가 떠오르고, 그 주제에 적당한 제목을 적은 후 그냥 쭉 써오는 습관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지난 주 쓰려고 했던 글의 제목을 생각하고 막 글을 쓰려고 했을 때, 장인어른의 사망소식에 대한 충격으로 글쓰기의 흐름이 소멸되어 쓰려고 했던 글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조차도 일하기 위한 나름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나름의 논리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나름의 순서가 없다고 하면 일은 말 그대로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서로 다른 일이 겹쳐서 동시에 많은 일을 해야 할 경우에는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고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을 찾아 순서를 정해서 일을 해야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일의 우선순위가 없이 서로 다른 일을 동시에 한다고 하면, 아마도 처리해야 하는 일들의 성과는커녕 실수와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이나 또는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기 위해서도 지금 당장 해야 할 것과 나중에 천천히 해야 하는 일의 순서를 정해서 차근차근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흔히 이런 과정을 단기적 계획,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 단계별 계획의 수립에 있어서도 각각 해야 할 일을 정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할 일을 정하고 그에 따라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일의 순서를 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비단 일을 하거나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것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동안 살면서 알게 모르게 아마도 거의 모든 영역에서 순서를 정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시험을 보고 성적의 순위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달리기나 운동경기에서 순위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어찌 보면 우리가 살면서 하는 것의 모든 것에 알게 모르게 순위를 정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위에 따라서 때로는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거나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순위 정하기와 더불어 우리는 그 순위의 상위권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순위 정하기는 곧 1등을 지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순위를 정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중위권이나 하위권에 속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고 인생이나 삶의 낙오자로 낙인찍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1등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은 1등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물론 1등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인정도 하고 존중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1등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이들의 역할과 임무와 노력이 우리 사회의 근저를 이루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위를 정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중요하고 긴급한 일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쉬운 일이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우선 단순하거나 쉽게 할 수 있은 일을 빨리 처리하고 중요한 일에 대한 심사숙고와 집중을 하는 것도 일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정하는 우선순위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끝 순위'를 정하는 것도 나름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것이 좋은 것이거나 긍정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먼저'라는 우선순위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에 연이은 어머님과 장인어른의 별세에 삶과 죽음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는 그 삶을 어떻게 사는 가에 따라서 긍정도 될 수 있고 또 다소 부정적인 것도 될 수 있지만, 그래도 평범한 삶 속에서 죽음의 우선순위는 결코 긍정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가 아닌 '나중'이 죽음의 경우에는 남아있는 가족에게는 조금은 더 위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고, 또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의지에 의해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런 것은 '나중'이라는 끝 순위를 택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우선순위에 목을 매고 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먼저'가 '나중'보다 항상 옳은 것이고 좋은 것이며 긍정적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1등만을 지향하는 노력을 해 왔고, 그 순위에 들지 못하면 낙오와 실패로 간주하는 잘못된 사고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운명 속에서 우선순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인간이 스스로 택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인식하게 됩니다. 정말 무엇이 우리에게 우선순위의 의미를 주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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