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포기-문과 선택-전공 탐색과 진로 결정이라는 과정을 거쳐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건 다시 과학이다.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끼고 있는 대전이란 도시에선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지만 나 같은 '과알못'이 과학기자가 될 거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물론 과학을 전공하고 잘 아는 사람만 과학기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같은 기자실을 쓰는 선후배 기자 중 과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전공자는커녕 이과생도 드물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도도 중요하지만 산을 볼 때 모든 나무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렇게 자위하는 중이다. 그래도 쉽지는 않다. 연구 성과 보도자료를 이해하고 기사화하는 과정이 그 어떤 출입처 보도자료보다 버거운 건 사실이다. 막히는 부분을 출입처 관계자에게 물어볼 때면 일단 먼저 하는 얘기가 "문송합니다"다. 알은체하기보다 모르는 걸 인정하고 묻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를 빗댄 신조어 '문송합니다'를 연신 내뱉을 때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한 달가량 시간이 지난 지금 아주 조금 고무적인 게 있다면 과학자에 대한 인식 변화다. 공감능력 부족한 공대생이라는 편견이 있었다면 좋은 과학자는 누구 못지 않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며칠 전 취재차 물리학 박사를 만난 자리서 역시나 "문송합니다"로 시작한 내게 그는 최대한 알게 쉽게 설명했다. 가만히 듣다가 "그래서 그 기술이 어디다 쓰이는 건데요?"를 물었는데 그 분야는 우주의 기원부터 인간의 병을 고치는 데까지 무궁무진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달 전·현직 교수들로 구성된 KAIST 기술자문단이 충남 아산 소재 스타트업 기업의 기술 자문을 해 주는 자리에 동행한 적이 있다.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자문을 해 주는 역할을 하는 자문단이 찾은 곳은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장비를 개발하는 곳이었는데 그 장비가 개발될 경우 80~90%를 차지하는 일본의 시장 점유율 일부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기업 관계자 설명이었다. 강제징용 판결을 이유로 감정적인 논란을 키워가는 일본을 혼내고 국내 경제와 경쟁력을 키우는 그 과정엔 과학자와 과학이 함께였다. 여전히 내겐 멀게만 느껴지는 여정이지만 더 이상 '문송하지' 않고 과학과 친해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임효인 행정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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