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발발하자 골령골에서는 정치범과 사상범을 대량 학살했다. 배우들이 그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
평화로드씨어터 달맞이꽃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관객이 참여하는 이머시브 역사교육이다. |
2일 오후 2시 세차게 비가 내리는 가운데 30여 명의 사람들이 옛 충남도청사 로비에 모였다.
"오늘 참여하시는 분들 이름 적고 싸인 해주세요"라는 이야기에 손을 들고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군복을 입은 군인이 나타나 외쳤다.
"여기에 서명한 이들은 모두 보도연맹으로 간주합니다. 너희는 전원 구금 대상으로 지금 즉시 대전형무소로 이감됩니다."
1950년과 2019년이 뒤엉킨 채 도착한 곳은 대전형무소. 어느새 내 가슴 왼편에는 수인번호 8769까지 붙었다. 시키는 대로 이름과 싸인만 했을 뿐인데, 정치범, 사상범으로 몰려 대전형무소에 이감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대전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이 첫 공개된 2일 참여자로 현장에 동행했다.
약 두 시간 동안 옛 충남도청과 대전형무소, 산내 골령골로 이어지는 역사교육이 테마다. 다만 기존과 다른 점이라면 일방적인 강의식 교육이 아닌 '이머시브(관객참여형)' 연극 틀이 적용됐다. 첫 시작부터 끝까지 헤드폰을 쓴 채 음악과 대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날은 태풍으로 인한 기상악화로 마지막 장소에서만 헤드폰을 쓰기로 했다.
전문배우들이 동행해 연극을 눈 앞에서 보는 듯 생생하다. 하지만 참가자들을 제 3자로 관망하게 두지 않는다. 이름 모를 수많은 수감자 중 한 사람이 되어 같은 고민과 같은 두려움을 품은 동지, 그리고 희생자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아니 우릴 왜 가둔겨?", "보도연맹이 도대체 뭔데?", "난 농사꾼이여. 보리쌀 준다기에 이름 쓴 것뿐인데…."
배우들은 주요 역사 포인트에서 질문을 던진다. 6·25전쟁, 보도연맹, 빨갱이, 이승만 등 대전형무소와 골령골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화두로 던져 역사적 사실을 쉽게 풀어낸다.
이번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의 백미는 역시나 동구 산내 골령골이다. 6·25가 발발하자 정부는 정치범과 사상범을 위주로 대량 학살을 명령했는데, 약 7000명에 달하는 수감자들이 골령골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눈이 가려진 채 귀로만 모든 상황을 가늠해야 하는 순간, 적막을 깬 건 총소리였다. 몇 발의 총성이 지나가자 "당신은 죽었습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아 이곳이 바로 골령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로드 씨어터에 참여한 황경희(대전 서구)씨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헤드폰을 쓰고 총소리를 들었을 때 이유도 모르고 당시 사람들이 죽었겠구나 싶었다. 좌익과 우익은 아픈 역사에서 나온 뿌리 깊은 우리의 역사임을 깨달았다"고 참가 소감을 전했다.
로드 씨어터가 종료되면 참가자들은 달맞이꽃을 심는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아픈 역사가 진실규명 되는 그날을 기다리는 한마음으로 꽃을 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팀장은 "예산 등 여러 제약으로 프로그램 개발과 완성이 목표였고 오늘 선보이게 됐다. 다만 내후년까지 대전방문의 해가 진행되는 만큼 달맞이꽃이 대전의 체험형 콘텐츠로 자리 잡길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한편 대전 동구청은 산내 골령골 학살지역을 평화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행안부, 기재부와 협의 중이다.
내년 봄, 수많은 희생자들의 넋만큼 수많은 달맞이꽃이 피길.
이해미 기자 ham7239@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진 달맞이꽃을 심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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