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화 미디어부 기자 |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고민이 생겼다는 박 팀장. 시중은행에서 대부계를 총괄하는 그는 근무시간 단축이 반갑기는커녕 오히려 한숨만 나온다고 푸념한다. 업무 특성상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일이 많아 칼로 자르듯 덮어놓고 퇴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박 팀장이 담당하는 기업대출 업무는 섭외를 시작으로 신용평가, 감정, 제안서 기획, 승인 등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걸리기도 한다. 근무 패턴도 일정하지 않다. 출근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각에 고객을 만나기도 하고, 출장도 빈번하다. 그러면서 기업체가 원할 때 자금이 지원되도록 서류도 꾸며놔야 한다. 필요에 따라 야근에 주말 근무도 해야 한다. 주 52시간제 잣대를 들이대기에 무리가 따르는 직종이다.
국경을 초월해 IT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세계 최대 포털사이트 '구글'의 전 디렉터였던 앤드류는 '유튜브 TV' 출시 당시 하루 12시간을 넘게 일했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왔다고 한다. 이를 노동력 착취의 관점에서 본다면 곤란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종사자들 대다수는 평균 1억 중반이 훌쩍 넘는 고액 연봉자다. 그들은 '자율과 성과 보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제한 노동을 펼치고, 국가는 막강한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7월부터 국내 금융권에 본격 시행되면서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은행의 오후 6시 30분, 모든 PC의 전원이 꺼지면서 근로시간 단축 '후폭풍'이 시작된다. 서류뭉치를 싸들고 집에 가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지만, 금융업무는 개인정보보호 등의 이유로 그러기도 쉽지 않다. 때문에 자금 집행에 필요한 서류준비가 늦어지면서 기업체와의 예정된 일정에도 문제가 생긴다. 돈을 쟁여놓고 빌리진 않을 터… 기업들은 원하는 시간대에 자금을 융통하기가 어려워지고, 재정불안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이로 인한 은행의 신뢰도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다. 결국, 기업들의 경영불안정은 국가경쟁력 하락의 주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금융권에 이어 정부의 '싱크탱크' 국책연구기관도 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잡음이 생기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6개 기관 중 노사합의와 개정을 마친 곳은 서너 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인력 충원 계획도 마련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 역량 저하는 불 보듯 뻔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박 팀장의 고민은 이미 IT와 연구직 등 특·다양성을 고려해야 할 업무직종에 고스란히 적용돼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현장의 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사족만 붙이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과연, 소는 누가 키워줄 것인가….
한세화 기자 kcjhsh99@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