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양어린이 제공 |
일곱 명의 파블로
호르헤 루한 지음│키아라 카레르 그림│유 아가다 옮김│지양어린이
가이아나에서 온 이민자의 아들인 파블로는 뉴욕에 산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단칸방에는 하루 12시간만 머물 수 있다. 얼마 전 뉴욕에 도착한 삼촌 부부와 네 명의 사촌이 그 단칸방을 함께 쓰기 때문이다. 파블로네가 12시간 방에 있는 동안, 삼촌네 가족은 거리에서 12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림책 『일곱 명의 파블로』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어린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각각 다른 나라에서, 다양한 이유로 힘겨운 매일을 보내고 있다. 700미터 땅속에서 구리를 캐는 칠레 광부의 아들 파블로, 아마존 밀림에서 엄마와 열매를 따서 먹고 사는 파블로, 폭압적인 독재정권을 피해 가족을 따라 멕시코로 망명한 아르펜티나 소년 파블로, 뉴욕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가이아나 이민자의 아들 파블로, 페루의 오지 마을에 살면서 하루에 우유 한 잔 마시기도 힘든 가난한 파블로,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고달픈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파블로, 먼저 미국으로 간 부모를 뒤쫓아가기 위해 위험한 화물열차 지붕 위에 몸을 실은 멕시코 소년 파블로.
라틴 아메리카 어린이들의 힘든 삶에 대한 문학적 보고서인 이 책은, 어린이들이 겪는 가난의 원인을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으로 지목한다. 독재정치가 낳은 불평등한 분배 구조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그 가난은 풍요의 땅인 미국을 향해 등을 떠밀지만, 그 길은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하다. 겨우 미국 땅을 밟아도 불법 체류자가 돼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애써 딴 열매를 떠돌이 악단에 건넬 만큼 다정하고,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걸 금방 깨달을 만큼 현명하다. 작가는 핍박 받고 힘든 삶을 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파블로들을 통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야말로 미래의 주인공이자 세상의 중심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파블로'는 고유명사가 아닌,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된다. 거친 선이지만 섬세하게 동심의 표정을 묘사한 그림도 아이들에게 가는 마음을 더한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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