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초 윤글라라 교사 |
대단한 발표 후에 내가 예상한 반응은 "오~예", "정말이에요?", "우와, 그런데 저희가 할 수 있을까요?" 였다. 설렘과 기대, 그리고 자신감 없는 모습이 보이면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온갖 희망적인 메시지로 격려와 응원을 해 줄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접한 반응은 "네? 시인이요? 그게 뭔데요?" 였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유치원을 갓 졸업한 1학년 아이들과의 생활은 늘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매일이 버라이어티한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책쓰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남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그 때의 발달 단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순수함과 특이성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한 작품이 책으로 발간되면 또래 아이들에게는 공감이 되고 어른들에게는 동심으로 인한 마음의 치유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불안하고 길을 헤맸다. 학교 생활도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무엇보다 한글해득이 완전하지 않아 글쓰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2개월여는 학교 적응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1학기는 한글 교육에 매진하니 여름 방학이 왔다. 글을 대단히 많이 썼지만 원래 기획한 또래에게는 공감이 되고 어른들에게는 치유가 되는 작품은 턱없이 부족했다.
1학년을 데리고 책쓰기라는 프로젝트는 욕심이었을까? 2학기에 접어들고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야속한 시간만 흐르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와서는 "선생님~! 소리가 안 나는 게 뭐가 있어요?" 라고 물어 보았다. 당시에는 흉내 내는 말로 국어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소리가 안 나는 거야 많지. 네가 한번 생각해봐." 사실 이렇게 뜬금없는 질문은 시간을 끌어야 한다. 잠시 생각에 잠긴 아이가
"선생님! 들렸어요?"
"뭐가?"
"제 생각이요. 제가 방금 생각을 했거든요. '소리가 안 나는 거가 뭘까?' 하고"
"당연히 안 들렸지!"
"그렇네요. 생각은 소리가 안나요!."
이렇게 나눈 대화가 작품으로 책에 실렸다.
「소 리」
시계는 째깍째깍
오토바이는 부릉부릉
자동차는 뛰뛰빵빵
강아지는 멍멍
다 소리가 나지만.
생각은 소리가 안 난다.
평소 말이 없고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평범한 아이와의 참신한 대화가 끝나고 이 아이의 작품 모음집을 훑어보았다. 그동안 그저 평범한 아이인줄 알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글들이 참신한 아이라고 느낀 이후에는 매우 독특한 글로 다가왔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아이들을 보는 나의 시각을 바꿨다. 평범하고 동일한 학생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생각을 하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격체로 보기 시작하니 그들의 글들이 다 귀한 작품으로 보였다.
성장을 같이 한 나무친구(매화나무) 기록, 한글 공부, 교과 공부, 그림책 활동, 그림일기 등 1년의 기록 하나하나가 이미 또래 아이들에게는 공감이 되고 어른들에게는 동심으로 인한 마음의 치유가 충분히 될 만했다. 그동안 무엇에 길을 잃고 헤맸던 것인지 반성을 해보니 책쓰기 사업 실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작품들, 어린이가 썼다기엔 수준 높은 작품들, 잘 다듬어진 글들만 찾았던 것이다. 애초에 나는 그 시기에만 발견할 수 있는 순수함과 특이성의 글을 책으로 엮고자 했음에도 말이다. 잠시 헤매긴 했지만 우연한 사건으로 사라질 뻔한 글들을 엮기 시작했고 그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모든 작업이 마무리 되어 책으로 출판되고 나서 모든 학부모님을 모시고 출판 기념회도 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은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도 현재 판매되고 있다. 물론 구입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가정에는 배부가 되었기 때문에 학부모조차도 구입할 일이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했고 그 결과로 책이 판매되며 그 책의 저자가 우리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생각과 추억은 이 책으로 엮여서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고 같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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