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은 그나마 괜찮다. 한 주가 지나면 도저히 답이 없다. 게으른 자의 최후는 주말 내내 청소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생각해보니 방뿐이 아니다. 운동화, 구두, 슬리퍼까지, 여름과 겨울 계절을 넘나드는 신발이 트렁크를 채우고 있다. 운전할 때는 낮고 편한 운동화, 일할 때는 그래도 옷과 격식을 갖춘 구두, 집에 갈 때는 슬리퍼.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차는 어느새 이동형 신발장이 돼 버렸다.
황국신민서사비, 역사책과 신문에서만 봤던 그 물건이 대전여고 공사 터에서 나왔다. 말은 안 했지만 정말 경악스러웠다. 일제강점기 악랄했던 시대의 산물이 수 십 년 간 학생들이 공부하는 터 아래서 잠들어 있었다니, 우리는 74년 전 광복을 맞이했지만, 진정으로 일제의 잔재를 뿌리 뽑지 못했음을 비웃듯 시대를 거슬러 우리 앞에 나타났다.
황국신민서사비는 정신 말살이 목적이다. 비문에 적힌 대로 우리가 천황의 신민임을 스스로 되뇌어 이를 믿도록 하는 이른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었다. 이런 교육이 대전에서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친일 잔재가 나타났다.
정지용 생가 앞 돌다리가 된 황국신민서사비처럼, 총탄에 맞아 쓰러진 듯 누워있는 산성초 황국신민서사지주처럼, 비참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오래된 정책이나 규정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불편해도 참고, 현시대에 맞지 않아도 지켜낸다. 우리는 이를 '관행'이라 부른다. 특히 예술계에는 오래 묵은 관행이 넘친다. 자유로움과 창조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사실 기대했는데, 예술계의 관행은 타 장르보다 더더욱 심하다. 운영규정을 바꾸는 것에도 몸을 사린다. 또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스스로 알을 깨서 나오지 않으면 결코 파란 하늘을 날 수 없음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 그 틀을 깰라치면 오히려 경계하고 웅크리기 바쁘다. 그래서 다들 개혁과 변화의 틀을 예술계에 함부로 들이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물며 옷도 신발도 쌓이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수고스러운 일이 되고 마는데, 사람의 가치관이나 시대의 적폐는 얼마 동안 치우고 버려야만 그 뒤에 감춰진 진짜 민낯이 드러날까.
청소가 필요하다. 내 방은 내가 알아서 치우면 되지만, 역사나 예술계 잔재와 관행을 쓸고 닦는 건 우리 모두가 협력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옷과 신발도 때와 장소에 맞는 'T.P.O(시간 time, 장소 place, 상황 occasion)'가 있듯이 시대를 흐름을 청소하는 일도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쌓이지 않게 바로 치우면 될 것을, 쉽고 간단한 길을 두고 돌고돌아 가는 건 참 아둔한 행보다.
이해미 교육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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