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지금, 청소합시다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지금, 청소합시다

  • 승인 2019-09-26 19:38
  • 신문게재 2019-09-27 22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중도일보 이해미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면 금세 불어난다. 차곡차곡 접어두면 그나마 나은데, 허물 벗듯 탈피된 옷가지는 책상에 서랍장에 쌓이고 만다.

하루 이틀은 그나마 괜찮다. 한 주가 지나면 도저히 답이 없다. 게으른 자의 최후는 주말 내내 청소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생각해보니 방뿐이 아니다. 운동화, 구두, 슬리퍼까지, 여름과 겨울 계절을 넘나드는 신발이 트렁크를 채우고 있다. 운전할 때는 낮고 편한 운동화, 일할 때는 그래도 옷과 격식을 갖춘 구두, 집에 갈 때는 슬리퍼.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차는 어느새 이동형 신발장이 돼 버렸다.

황국신민서사비, 역사책과 신문에서만 봤던 그 물건이 대전여고 공사 터에서 나왔다. 말은 안 했지만 정말 경악스러웠다. 일제강점기 악랄했던 시대의 산물이 수 십 년 간 학생들이 공부하는 터 아래서 잠들어 있었다니, 우리는 74년 전 광복을 맞이했지만, 진정으로 일제의 잔재를 뿌리 뽑지 못했음을 비웃듯 시대를 거슬러 우리 앞에 나타났다.



황국신민서사비는 정신 말살이 목적이다. 비문에 적힌 대로 우리가 천황의 신민임을 스스로 되뇌어 이를 믿도록 하는 이른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었다. 이런 교육이 대전에서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친일 잔재가 나타났다.

정지용 생가 앞 돌다리가 된 황국신민서사비처럼, 총탄에 맞아 쓰러진 듯 누워있는 산성초 황국신민서사지주처럼, 비참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오래된 정책이나 규정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불편해도 참고, 현시대에 맞지 않아도 지켜낸다. 우리는 이를 '관행'이라 부른다. 특히 예술계에는 오래 묵은 관행이 넘친다. 자유로움과 창조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사실 기대했는데, 예술계의 관행은 타 장르보다 더더욱 심하다. 운영규정을 바꾸는 것에도 몸을 사린다. 또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스스로 알을 깨서 나오지 않으면 결코 파란 하늘을 날 수 없음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 그 틀을 깰라치면 오히려 경계하고 웅크리기 바쁘다. 그래서 다들 개혁과 변화의 틀을 예술계에 함부로 들이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물며 옷도 신발도 쌓이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수고스러운 일이 되고 마는데, 사람의 가치관이나 시대의 적폐는 얼마 동안 치우고 버려야만 그 뒤에 감춰진 진짜 민낯이 드러날까.

청소가 필요하다. 내 방은 내가 알아서 치우면 되지만, 역사나 예술계 잔재와 관행을 쓸고 닦는 건 우리 모두가 협력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옷과 신발도 때와 장소에 맞는 'T.P.O(시간 time, 장소 place, 상황 occasion)'가 있듯이 시대를 흐름을 청소하는 일도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쌓이지 않게 바로 치우면 될 것을, 쉽고 간단한 길을 두고 돌고돌아 가는 건 참 아둔한 행보다.
이해미 교육문화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대, 공주대와 통합 관련 내부소통… 학생들은 반대 목소리
  2. 갑작스런 비상계엄령에 대전도 후폭풍… 8년 만에 촛불 들었다
  3. [사설] 교육공무직·철도노조 파업 자제해야
  4. 계엄 선포에 과학기술계도 분노 "헌정질서 훼손, 당장 하야하라"
  5. 충남도, 베이밸리 메가시티 추진 속도 높인다
  1.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2. [사설] 어이없는 계엄령, 후유증 최소화해야
  3. 대전·충남 법조계, "비상계엄 위헌적·내란죄 중대 범죄" 성명
  4. 윤 대통령 계엄 선포 후폭풍
  5. 전교조 대전지부 "계엄 선포한 윤석열 정부야말로 반국가 세력"

헤드라인 뉴스


韓 “계엄 옹호 않지만, 탄핵안 통과 안돼… 탈당은 재차 요구”

韓 “계엄 옹호 않지만, 탄핵안 통과 안돼… 탈당은 재차 요구”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5일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위헌적인 계엄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윤 대통령의 탈당을 재차 요구했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이미 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국민께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민의 삶은 나아져야 하고 범죄 혐의를 피하기 위해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은 또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 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는 4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국내 유망기업 7개 사와 1195억 원 규모 투자와 360여 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과 정태희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아이스펙 한순갑 대표 ▲㈜이즈파크 정재운 부사장 ▲코츠테크놀로지㈜ 임시정 이사 ▲태경전자㈜ 안혜리 대표 ▲㈜테라시스 최치영 대표 ▲㈜한밭중공업 최성일 사장 ▲㈜한빛레이저 김정묵 대표가 참석했다. 협약서에는 기업의 이전 및 신설 투자와 함께, 기업의 원활한 투자 진행을 위한 대전시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신규고용 창출 및 지역..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이 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빠르면 6일부터 표결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본회의 의결 시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은 이날 오후 2시 43분쯤 국회 의안과를 방문해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세종갑)이 참여했다. 탄핵안에는 윤 대통령이 12월 3일 22시 28분 선포한 비상계엄이 계엄에 필요한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