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길러낸 어머니가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 ~ 1551, 조선 서화가)이다. 슬하에 5남 3녀를 두었다. 48세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훌륭하게 가정을 이끌고 자녀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을 십분 발휘하며 살도록 도왔다. 남다른 열정으로 자기계발에 힘써 서화로 일가를 이루었다. 문헌에 의하면 당대에도 명성이 자자했던 여류화가로 보인다. 대학자를 길러낸 어머니로서 유림에선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삼아 왔다. 폄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론 수렴과 종합적 판단을 거쳐 2009년 발행된 5만 원권 인물이 되었다. 선정이유랄 수 있는 역사성, 정체성, 시대적 요구, 미래사회 이상 등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최근 최대 이슈가 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주변을 보면서, 내조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과거, 아내가 남편 일이 잘되도록 도움 주는 것을 내조라 했다면, 요즈음엔 배우자가 서로 내적으로 격려하고 힘이 되어 주는 것이리라. 부부 일심동체 아닌가? 서로 간에 괴리가 존재하면 파탄에 이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면서 개인의 가치나 존재감이 상실되어서도 안 된다. 어느 것이 진정한 내조일까? 신사임당 이야기로 조국 사태를 반추해보고자 한다.
신사임당이 살던 당시, 여필종부(女必從夫), 삼종지도(三從之道) 등 남자에게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여자의 삶이었다. 강요당했다고 하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통상 글을 배우는 것도 차단되어 있었다. 다섯 딸 중에 둘째로 태어난 사임당에게 그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글을 가르쳤다. 기초학습은 물론, 사서삼경, 통감 등 경전과 고전을 두루 익혔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여, 7살 때 외할아버지가 가져다준 안견의 산수화를 그대로 그려냈다고 한다. 가르침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기계발에 부단한 노력을 경주했다. 능동적으로 존재감을 보이고 자기 존중감을 가졌다. 자녀를 가르침에도 본인이 충분히 이해를 갖은 다음 가르쳤다. 행동과 실천으로 본보기가 되었다. 그것이 가풍이 되어 모든 자녀가 본받게 된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엄격했다. 온화하고 부드러웠으나 자녀들의 잘못은 엄히 경계하고 타일렀다. 자녀에게 쉽게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수많은 편지를 보내 심모원려(深謀遠慮)하였다. 고결한 인품을 지니도록 도운 것이다. 남편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간곡하게 권유하여 고치게 했다. 나아가 주위 사람의 과실도 준엄하게 나무랐다고 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 잘못을 용서하면 일상이 된다. 거짓도 마찬가지다. 거짓이 쌓여 산이 되면 감당하기 어렵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사소한 일부터 바로잡아야 거대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사임당은 엄격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에 못지않게 상대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아무리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한다.
신사임당 아버지도 처가살이하였지만, 남편도 처가살이하였다. 남편은 요즘 말로 백수건달이었던 모양이다. 공부를 시키기 위해 협박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거 공부를 독려하며 절에 들어가 공부하지 않으면 자신이 머리 자르고 비구니가 되겠다 한다. 급제할 때까지 별거하자며 남편을 절간으로 내쫓는다. 3년 겨우 지나 버티지 못한 남편이 영의정을 찾아가 벼슬자리를 알아본다. 영의정 인품을 알아낸 사임당은 극구 만류하여 훗날의 화를 면하기도 한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 했던가? 남편이 주막집 여주인을 첩으로 들이고 두 집 살림을 한다. 그를 두고 벌인 두 사람 토론을 실감나게 그린 책도 있다. 애당초 남편은 사임당 상대가 되지 못한다. 공부와 재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싸움 중, 자신 사후에 재혼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재혼으로 빚어지는 온갖 불상사를 예견한 모양이다. 남편은 사임당 말을 저버리고 첩을 집안에 들여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도 한다.
학창 시절 현모양처가 이상이라는 여학생이 많았다. 주제에 자기 성장이나 꿈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지나고 보니, 그도 커다란 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결혼하는 순간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본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다. 자연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관계의 첫걸음은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깟 이력서 한 줄이 문제인가? 일생을 지탱할 기둥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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