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는 시부모님께서 사과를 주셔서 평소 반찬 등 신세를 지고 있는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추석 전날 시댁에 가는 길에 나눠주러 들렀다. 나와 같이 맞벌이를 하고 있는 그 엄마는 시댁에 간다는 말에 "OO엄마~ 누가 요새 명절에 시댁에 가~~ 남편한테 말 좀 해야겠네~ 내 주변 맞벌이들도 아무도 시댁 안 가는데. 이렇게 연휴가 긴데 가족끼리 여행이나 가면 얼마나 좋아?"라며 위로섞인 말을 건넸다.
명절이면 당연히 부모님을 뵈러 가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괜시리 부러워졌다. 남편에게 아이 친구 엄마의 말을 전하며 "에휴~ 난 언제쯤 명절에 여행을 가볼까"하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시부모님이 기독교를 믿으셔서 명절, 제사에 딱히 바쁘고 힘들지는 않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 한 구석의 부담은 어쩔 수가 없다. 큰 집이었던 우리 친정은 명절이면 늘 친척들이 오고갔다. 명절 전날이면 엄마와 함께 전을 부치고 차례 준비를 도왔고 가끔은 동동 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나 역시 명절 전날이면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약속을 잡지 못했고 시골에 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연휴를 즐기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자라왔던지라 명절에 시댁에 가고 친척들을 만나는 것에 큰 반감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명절이면 붐비는 공항 모습 등 달라진 풍경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긴 휴가를 쓰기 어려운 직장인들에게 3일, 혹은 그 이상의 명절 연휴는 최고의 휴식이다. 하지만 달력 속의 연달아 새겨진 빨간숫자 들은 나와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페미니즘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지만 내 주변에는 아직도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는 며느리들이 꽤 있다. 아니, 최근에는 여자들만이 아닌 남자들도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가족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모이지만 길고 긴 운전시간, 끊이지 않는 집안 일, 가족간의 해묵은 갈등 등으로 명절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신문 다문화지면에 실린 결혼이주여성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몽골 출신인 그 여성은 고향에서는 제사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며 음식부터 뒷정리까지 모두 여성의 몫인 한국의 문화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자신 주변의 외국 여성 친구들은 "명절이 제일싫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누구를 위한 문화인지 모르겠다는 그 몽골여성의 솔직한 이야기에 마음 한구석이 뜨끔했다.
이번 명절 우리 시댁에서도 명절날 모이는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간단하게 가족들과 연휴를 즐기고픈 마음과 바쁘고 힘들더라도 1년에 두번은 친인척이 만나 정을 나눠야 한다는 마음.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점차 달라지는 사회 문화 속에서 '명절의 딜레마'는 계속될 것 같다.
서혜영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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