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꽁보리밥이 싫다
차승열 /시인
친구들을 따라
후미진 골목길로 해서 찾아간
꽁보리밥집
누구는 건강을 위해 먹고
누구는 추억으로 먹고
외진 곳에 자리 잡은 허름한 식당이었는데도
꽤나 붐비고 있었는데
나는 다들 맛있다고 호들갑떠는 꽁보리밥을 마다하고
굳이 순두부 찌개나 된장찌개로 대충 허기를 때우고
씁쓸하게 식당을 나선다
나는 꽁보리밥이 싫다
보릿고개를 넘어가던 어머니의 한숨과 눈물처럼
입 안에서 오글거리는 가난했던 기억들이 싫다
낮은 추녀 끝 대소쿠리에
음흉하게 담겨있던
거무튀튀한 꽁보리밥이 죽어도 싫다
그리울지언정
허기지고 서러운 세월 위에 그려지는
슬픈 동화가 나는 싫다
-문학사랑협의회 회원-
*시작 메모
나이가 들면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옛날에는…"이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릇처럼 나오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담이지요.
하지만 가끔씩 내게 되물어봅니다.
과거는 과연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먹고 살만해진 현대인들에 의해 과대포장된 일종의 사치는 아닐까. 화두의 첫머리에 요즈음 건강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꽁보리밥이 등장합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종달새 우는 푸른 보리밭은 그리울지언정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어린 눈으로 목격했던 수많은 불행들을 생각하면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가난이 아름답다니요?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추장에 비빈 시꺼먼 꽁보리밥이 어떻게 하얀 쌀밥에 고깃국보다 맛있을 수 있나요. 가난은 얼마나 많은 무지와 병마와 절망과 좌절을, 나아가 인권과 자유 행복같은 한 인간으로써 누려야할 신성한 삶의 가치들을 송두리채 빼앗아갔는지요.
그래도 아름다웠노라며 슬픈 동화를 위안삼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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