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SNS가 불러온 B급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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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SNS가 불러온 B급의 시대

  • 승인 2019-09-18 13:49
  • 신문게재 2019-09-19 22면
  • 금상진 기자금상진 기자
금기자
기승전결의 구조는 기본이었다. 화려한 그래픽과 탄탄한 스토리 수십 초 분량의 영상에도 반드시 주제와 의미가 담겨 있어야 했다. 한 컷 분량, 찰나의 영상에도 그 장면을 쓰게 된 이유에 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기자는 영상을 그렇게 배웠다. 한때는 그런 영상물이 주목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유튜브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유튜브에서 조회 수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는 콘텐츠에는 화려한 그래픽이나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거의 없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영상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B급 감성이라는 장르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완성도 높은 영상 콘텐츠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영상물이 SNS라는 새로운 생태 통로를 통해 일반인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B급 콘텐츠는 제작기법이 비교적 단순해 쉽게 제작할 수 있다. B급 콘텐츠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10년 초반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선 '귀귀 갤러리'라는 웹툰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9금 소제를 가볍게 뛰어넘는 것도 모자라 피가 난무하는 잔인한 폭력장면, 개연성 없는 비현실적인 전개로 진행됐지만 독자 수는 꾸준히 들어나 마니아층까지 생겼다. 사람들은 '병맛'이라 부르며 즐기기 시작했다.

웹툰에서의 병맛 콘텐츠는 영상으로 옮겨졌다. 수도권에 위치한 한 한의원은 병맛 웹툰을 영상으로 제작해 광고를 만들었다. 인터넷과 극장용 광고로 배포됐던 영상은 '약 빨고 만든 광고'라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서울 인근에 있던 평범한 한의원은 한동안 유명세를 떨쳤다. 제작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SNS를 통해 영상물이 공유되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는 B급 영상으로 가장 유명해진 지자체가 됐다. 충주호, 사과, 탄금대가 전부였던 지방의 소도시가 공무원의 작은 아이디어로 유튜브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공보실 소속의 김선태 주무관은 유튜브를 해보라는 단순한 업무지시를 본인의 스타일에 맞춰 영상을 만들었다. '시장님이 시켰어요'라는 제목의 영상은 조회 수 43만 회를 기록했다. 수소차를 소개한 '관용차를 훔쳐라' 낮잠 방송 '대신 자 드립니다' 등 후속 영상도 조회 수 20만 건을 넘어섰다. 영상의 구성은 단순하다. 공무원의 평범한 일상을 단순 컷 편집에 바탕체의 자막, 촌스러운 감성의 음악(충주시가)을 가미해 제작했다. 외주 제작사에 수천만 원을 들여 제작한 타 시도의 홍보영상이 수백 또는 수천 건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예상을 초월하는 역발상이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해주고 있는 것이다.

수년간 외면받았던 B급 영상이 세밀한 기획과 억대의 예산을 들여 만든 A급 영상과 경쟁을 펼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은 B급의 시대는 당분간 지속 될 것으로 보인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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