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여고 신축건물 공사터에서 발견된 황국신민서사비. 높이는 1m 정도다. |
지난 5월 대전여고 본관과 운동장 사이 신축건물 기초 공사터에서 높이 1m 남짓의 돌덩이 하나가 발견됐다. 이 돌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천황에 충성 맹세를 강요했던 이른바 '황국신민서사비'였다.
대전여고는 발견 즉시 문화재청으로 신고했고,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진위 파악을 위해 현장 예비조사를 실시했다. 현재 소유권자로 지정된 대전교육청으로 이관에 앞서 고고연구실에 임시 보관 중이다.
황국신민서사비는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 말살 정책으로 사용된 것으로 아동용과 성인용으로 나뉜다. 아침마다 천황에 대한 충성 맹세를 강요하기 위해 일본은 1930~1940년 사이 조선에 세워진 모든 초·중·고교에 이 비석을 세웠다. 이후 1945년 광복이 되자 일본군은 서사비를 땅에 묻고 철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여고(당시 대전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가 1937년 설립된 시점으로 봤을 때, 황국신민화 정책이 절정에 달했던 1940년 전후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견된 비석 비문은 완벽하게 해석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동안 발견됐던 황국신민서사비의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우리들은 인고단련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의 내용(유아용)과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세워진 전국의 초중고에는 황국신민서사비가 대부분 세워졌었다. 아마 대전여고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다른 학교에도 비석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대전교육청은 향후 황국신민서사비를 교육적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소유권자로 교육자료라는 측면에서 대전교육청을 지정했으나, 교육청은 최초로 발견된 대전여고의 의사를 적극 검토·반영 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만약 대전여고에서 관리와 보관이 어렵다고 할 경우, 한밭교육박물관이나 대전시립박물관과도 협의할 예정"이라며 "모든 시민이 열람할 수 있고, 전문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방향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전지역 초중고에서 황국신민서사비가 발견된 것 이번이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다. 1995년 산내초 교정에서 황국신민서사비가 발견됐고, 1997년 한밭교육물관으로 이전됐다.
전문가들은 비석 발견에 대한 이슈보다는 이 친일 유물을 통해 정확한 역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동안 서사의 내용이 무엇인지 교육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한남대 사학과 이경용 교수는 "1930년대 일본이 한국을 장악한 다음 한국 역사를 말살하고 교육과정에서 천황의 신민이라는 것을 의무적으로 강요하기 위해 황국신민서사비를 세웠다. 이는 조선인의 얼과 역사를 잊게 하려던 황국신민화 교육의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발견으로 다시 한번 과거를 상기시켜야 한다. 통한의 역사를 학생들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 활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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